"꿈에서나 만나려나"… 충북지역 '눈물의 명절'
"꿈에서나 만나려나"… 충북지역 '눈물의 명절'
  • 유태종 기자
  • 승인 2013.09.16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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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애타는 추석-청원 남이면 이동오옹
정부, 3년만에 이산가족상봉 행사
우리측 96명·북측 100명 최종확정

충북지역 최종 후보자 한명도 없어
"남은 생에 동생 생사라도 알았으면…"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이 가고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가을 들녘의 초저녁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는 이맘때쯤이면 추석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풍족한 한가위. 고향집에 가 지친 심신을 달래고 그리웠던 어머니의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5시간이면 어떻고 10시간이면 어떠랴. 꽉꽉 막힌 도로의 차들도 그리운 가족을 만나러 가는 데 방해물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가족이 전 세계 어디에 있던 맘만 먹으면 보러 갈 수 있는 시대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정 안되면 영상으로라도 하다못해 목소리라도 언제나 들을 수 있다. 불행하게도 단 한곳만 예외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곳, 아무리 가고 싶다 한들 갈 수 없는 곳, 바로 북녘 땅이다.

◇ 국내 이산가족 현황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겨우 철조망 하나에 가로막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이산가족이 남측에만 12만8842명으로 이중 생존자가 7만2882명, 사망자가 5만5960명이다.

충북지역의 이산가족은 2270명으로 전체의 3.1%이며 충청권에서 가장 많다. 충남은 2155명(3%), 대전 1652명(2.3%), 세종 147명(0.2%)의 이산가족이 등록돼 있다.

이들 가족들은 매일을 떨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지만 특히 추석같은 명절이면 한없이 그립고 안타까워진다.

◇ 3년만에 이산가족상봉 열려

이들의 유일한 기대는 정부에서 해마다 명절쯤이면 실시하는 남북이산가족상봉 뿐이다.

다행히 올해는 3년 만에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열린다.

참여인원은 우리측 96명, 북측 100명으로 통일부는 16일 이산가족 상봉단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 .

앞서 남북측은 지난 13일 생사확인 의뢰서를 교환, 북측 127명과 우리측 117명의 상봉 후보자를 추렸다. 이어 지난 주말동안 후보자들을 상대로 상봉 의사 및 건강상태 등을 확인해 이날 최종 명단을 확정했다.

당초 남측 상봉단은 100명으로 꾸릴 예정이었으나 일부 후보자들이 건강상태 등을 이유로 상봉을 포기해 최종 96명으로 결정됐다.

남북 상봉단은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을 순차 방문, 상봉행사를 진행하게 된다.

우리 측 상봉단 96명은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금강산을 방문, 북측 가족들을 만나며 27일부터 30일까지 북측 상봉단 100명이 금강산을 방문해 우리 측에서 올라간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 충북지역 최종후보자 포함안돼

그러나 충북지역에서 이번 이산가족상봉 최종명단에 포함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북측에서 최종 선정된 100명의 상봉단 중에서 충북지역 출신으로 밝혀진 사람만 5명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꿈에서만 그리던 그리운 가족을 만나러 가게 된 방문단의 기쁨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반면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또 기다렸지만 이번에도 방문단에 속하지 못한 또 다른 이산가족들의 슬픔 역시 헤아릴 수 없긴 마찬가지다.

이번 상봉단에 포함되지 못한 충북지역의 이산가족들은 이제는 흐릿해져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가족들의 얼굴을 꿈에서나 그리며 눈물의 명절을 보내야 한다.

◇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았으면"

“그때 내가 대신 갔었어야 했는데.”

이번에도 최종 명단에 오르지 못한 충북 청원군 남이면의 이동오옹(91·사진)은 한국전쟁 당시 3살 아래 남동생 동준씨가 북한 의용군에 징집돼 끌려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동생 대신 가겠다고 아무리 나서봐도 동네사람들에 의해 저지됐다.

동네에서 열명 남짓 의용군에 끌려갔다가 이후 대여섯 명이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동생은 끝내 오지 못했다. 이들에게 동생의 소식을 물어봤지만 평양까지 함께 있었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 이후 63년의 시간을 동생의 생사조차 모른체 지내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있을때마다 신청서도 내봤지만 감감무소식. 하다 못해 말끔히 목욕하고 옷을 차려입은 뒤 증명사진을 찍어 가족들의 이름과 함께 적십자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수차례지만 매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매일 막내아들 생각에 가슴앓이를 하던 어머니도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동생 동준씨를 알아볼 수 있는 혈육이라곤 혼자 뿐이다. 이 옹은 “남은 생에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 이제는 그저 동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며 그리운 동생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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