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벗에게
가을밤 벗에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9.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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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따지고 보면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혼자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좋든 싫든 누군가와 함께 지지고 볶고 하며 사는 것이 보통의 삶의 모습이다. 간혹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긴 해도,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살다보면 이유야 어떻든 간에 사람은 낯선 곳에 혼자 있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부쩍 평소에는 모르고 있던 그리움의 정이 솟아나곤 하는 것이다. 더구나 계절이 가을이고, 거기에 시간이 밤이면 그리움의 병은 더욱 도진다. 당(唐)의 시인 위응물(韋應物)도 가을밤 앓이를 피할 수 없었다.

◈ 가을밤 벗에게(秋夜寄邱員外)

懷君屬秋夜,(회군속추야), 그대 그리운데 때는 마침 가을밤

散步詠凉天.(산보영량천). 산보하며 서늘한 날씨를 읊조린다

空山松子落,(공산송자낙), 텅빈 산에 솔방울 떨어지고

幽人應未眠.(유인응미면). 산 속의 그대는 응당 잠 못이루리



※ 사람은 누구나 친구가 그리운 날이 있다. 시인에게는 오늘이 그 날이다. 구(邱)라는 성(姓)에, 원외(員外)라는 벼슬을 지낸 친구, 구원외(邱員外)가 불현 듯 보고 싶어졌는데, 때는 마침 그리움의 정을 촉발시키는 가을이다. 거기에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밤이다. 그리움이 가장 도지는 시간과 가장 그리운 대상이 결합되었으니 그야말로 그리움의 최적화(最適化)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리움의 병이 도진 시인은 그냥 가만히 잠자리에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집 밖으로 나선다. 일정한 방향 없이 천천히 걸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시린 가슴에 서늘해진 날씨까지 더해지자,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는 친구에 대한 그리운 정을 시로 토로하기에 이른다. 친구가 눈앞에 있는 건 아니지만, 시인의 눈에는 지금 친구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의 친구는 깊은 산 속에 은거(隱居)하고 있는지라, 곁에 같이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가 머무는 산은 텅 빈 산(空山)인 것이다. 이 텅 빈 산에 가을이 드니, 여기저기서 솔방울(松子)이 떨어지는데, 고요한 밤이 되자 그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가을이 되어 부쩍 외로워졌을 친구에게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아마도 천둥처럼 크게 들릴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 친구가 틀림없이 아직 잠 못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應未眠). 철은 가을, 시간은 밤, 여기에 텅빈 산과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잠 못드는 은자, 이 모두를 한 데 어우러지게 하여 단단한 외로움의 덩어리를 만들어 낸 시인의 솜씨가 탁월하다.

그리움이 도지는 가을이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더라도, 문득문득 외로워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가을에는 그렇다. 그러나 외로움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앓기 보다는 즐기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외로움을 즐기는 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해야 한다. 왕도(王道)는 없겠지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각자 취향대로 할 일이다. 술 마셔도 좋고, 산에 가도 좋고, 운동을 해도 좋다. 무엇이든 흉금을 틀 수 있는 친구와 함께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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