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처럼 살고 싶다
풀꽃처럼 살고 싶다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8.0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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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오늘 아침에는 자주보랏빛 꽃차례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공룡의 머리처럼 생긴 꽃봉오리도 특이하지만, 꽃차례가 봉오리를 열고 나오는 모습은 수수이삭을 주인 몰래 잘라 보자기에 싸려다 들킨 것처럼 쑥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빗방울이 맺힌 덜 핀 바디나물 꽃차례 위에 거미집을 지었다. 왕거미란 설계사가 방사형 도시처럼 아주 근사하게 쳐 놓았다. 노고를 치하해 걷어 내지 않고 피해 가며 카메라를 가까이하니 왕거미는 머리를 아래로 하고 꼼짝도 안 하고 있다가 내가 이동을 하니 재빨리 움직인다. 덕분에 앞, 뒤, 옆모습을 한자리에서 찍을 수 있다.

키다리 인형이라는 꽃말을 가진 금 꿩의 다리도 훌쭉 하니 쭉 뻗어 있다. 꿩의 다리 가족 중에 가장 아름다운 종류인 것 같다. 가냘프고 긴 줄기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꽃봉오리의 자태가 어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지 꿩의 다리 특유의 자주색의 가는 줄기도 매력이 있다. 줄기가 꿩의 다리 같아 붙여진 이름인데 학의 다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미풍에도 하늘거리며 황금빛깔의 수술을 가진 금 꿩의 다리가 반짝 햇빛 에 눈부시게 빛난다.

가을 운동회 장대 위의 박처럼 매달려 있다가 보랏빛 꽃잎을 살포시 열면 점심시간을 알리는 신호처럼 금색의 꽃술이 촘촘히 늘어지는 모습이 나비들의 축제장인 것 같다.

얼마 전 마트에서의 일이다.

물건을 바구니에 담고 바나나 두 묶음을 담으니 너무 무거웠다. 먼저 계산대 한쪽에 올려놓고 다른 물건을 고르러 가는 순간, “지금 계산하지 않을 거면 치워주세요?” “아니 바로 할 거예요 한 가지만 더 골라 가지고 올게요.” “이거 치워 달라 구요?” 한다. 속으로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나?”하면서 아예 물건 담긴 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려놓으면서 “그럼 모두 계산 하세요. 커피하나 얼른 가져올게요?” 어이가 없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갈 때까지 계산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생각으로는 물건을 한 가지 더 가져와도 계산은 반도 못할 것 같아서 그리 행동한 것이었다. 손님이 뒤에서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어떻게 일을 하나 싶어 걱정이 됐다. 계산하는 동안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에구 답답한 여자 저래가지고 원” 그 짧은 순간 속으로는 별의별 나쁜 말을 그에게 퍼부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자주 분노가 일어난다. 어디 이뿐이랴. 사소한 것에도 툭하면 화를 잘 내고 눅눅한 장마와 높은 기온 탓 인지 일시적인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고 공감하며 긍정적인 사람이 되라고 귀가 따갑게 얘기하면서 불끈불끈 올라오는 내 안의 감정들을 나는 언제쯤 무덤덤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지.

울안의 있는 풀꽃들은 내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때가 되니 꽃을 피웠다. 분수에 몇 송이 피울 뿐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다. 어렵게 피운 꽃도 벌과 나비에게 전부를 내어주고 꽃의 임무를 다하면 후대를 기약할 얼마간의 열매와 씨앗을 남기고 아낌없이 버린다. 오늘 아침 풀꽃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의 있는 모든 말, 억울함, 분노를 또다시 풀꽃들에게도 토해냈다. 내 속은 후련한데 내가 아끼는 풀꽃들은 기분이 어떨지.

내일 아침에는 풀꽃들이 피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원망했던 마트의 여직원도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 일진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또 배워도 모자라니 풀꽃에게 부끄럽기 그지없다. 온 종일 이들 옆에서 잡초 뽑아주고 벌레 잡아주는 소일거리로 갚아야 할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보랏빛 풀꽃과 교감을 나누면 내 마음속의 미움의 감정이 정화되겠지. 내일도 아름답게 피어다오. 오늘따라 풀꽃들의 삶이 너무도 고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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