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7.2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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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푸드표현예술치료, 72시간의 연수과정이 끝나간다. 늘 대하는 음식재료를 만지고 다듬고 먹으며 심리적인 안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시간이다.

오감을 자극해 깨우고 내면의 욕구를 표현하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활용하고 적용이 가능하며 스스로 자기치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셀프테라피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기록하고 현재의 생각과 감정, 꿈과 소망을 표현한다. 천연의 음식재료를 통해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마음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며 과거의 상처를 감싸 안아 깊이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저 만들어서 먹기만 했던 음식재료가 심리치료에 활용된다는 사실에서 호기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마지막 날, 연수자들의 시연시간이다. 나는 시연주제를 ‘아버지의 삶’으로 정했다. 음식재료는 요즘 많이 나오는 옥수수와 어린 시절 간식으로 제일 많이 먹었던 추억을 생각하며 고구마도 정했다. 이 재료로 아버지를 표현해본다. 부지런하며 엄하시고 어머니께 늘 근사한 밥상을 받으셨던 아버지다.

아버지는 농부였다. 아버지의 농사수첩에는 그날그날 파종하는 씨앗들이며 방법에 대해 적혀있다. 공고를 졸업한 후 할아버지 혼자 농사지으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도회지의 취직자리도 물리치고 고향으로 들어와 농사를 지으셨다. 오십 년이 넘도록 농사를 천직으로 아셨던 분, 더러는 자식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상장과 취직하여 술 한 잔 대접에 기뻐하시던 분, 때론 건주정도 즐기신 애주가요, 담배라면 꼭두새벽부터 피워 골초애연가였던 아버지, 다 늦게는 농사일을 놓고 게이트볼을 즐기셨던 아버지.

멋진 분이셨지만 남들에게 사기도 당해 마음 고생하신 아버지를 횃불로 표현해본다.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당신 삶을 통해 자식에게 인생을 알려주고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아버지는 내게 열정을 가르쳐준 마음의 횃불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두발자전거를 가르쳐주신다고 뒤 안장을 잡고 따라다니시고, 처녀 시절에는 오토바이를 가르쳐 주신다며 딸을 태우고 학교운동장을 돌던 일, 시집보내고서는 운전은 필수라고 학원등록을 해주시던 우리 아버지. 그 시절 쌀자루 짊어지고 딸 집에 드나들기 힘드셔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짠하다. 약주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도 가끔 한잔하는 것과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니 아버지 유전자임이 틀림없음이다.

그런데 요즘 내 몸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지 부쩍 힘이 들고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진다. 이런 내 마음을 신선한 초록의 채소와 천연색깔의 열매와 과일, 갖가지 마른 곡식들로 감정을 표현해본다. 만지고 자르고 뜯으며 내 마음을 표현해 접시에 담는다. 풍성한 푸드예술작품을 창작한 만족감과 성취감에 먹을 수 있는 즐거움까지 더해지니 내 마음이 힐링 되는 것 같다.

표현된 작품을 보고 의미를 생각하면서 푸드 마음일기를 써본다. 컴퓨터에 올린 사진을 보니 감동이다. 내가 만든 작품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더욱 아름답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시간 푸드 아트로 언제나 긍정적이시던 아버지를 가까이 만났다. 음식을 통하여 아버지의 지난 삶을 한꺼번에 표현하기는 부족하지만 푸드 표현 예술로 인해 승화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보람된 시간이다.

지금 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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