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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은아 <옥천도서관 사서>
  • 승인 2013.07.1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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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옥천도서관 사서>

본격적인 무더위를 알리는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계속된 장맛비로 기분까지 눅눅하고 개운치 못했는데 매미 소리로 인해 무더위까지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여름날 나에게 있어 가장 좋은 피서는 술술 잘 읽히는 책을 가득 쌓아 놓고 시원한 커피 한잔과 선풍기 바람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산이나 바다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이제는 대형마트도 예전처럼 시원하지 않다. 나는 올여름에도 피서를 위해 책을 차근차근 쌓고 있다. 바라만 봐도 뿌듯할 만큼의 양으로 쌓아 놓고,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피서를 위해 도서‘28’(정유정 저·은행나무)을 첫 번째로 선택했다. 사실 정유정 작가는 일단 작품이 나오면 믿고 사버리는 작가 중에 한 명이다.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했단 문구와 함께 어떠한 설명 자료도, 심지어 출판사 소개 글도 읽지 않고 구매버튼을 눌렀다. 책이 배달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려서 읽은 나의 여름 책읽기 프로젝트의 첫 타자가 된 것이다.

정유정 소설의 특징은 객관적이며, 구성이 치밀하고 문장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번 ‘28’ 속에서도 그녀의 특기는 십분 발휘되어 읽다가 주저하기도 하고, 잔혹함에 잠시 책장을 덮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니 이 책이야말로 더위를 피하는 것으로 제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피식 웃기까지 했다. ‘28’은 불볕도시 ‘화양시’에서 28일간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알래스카에서 온 머셔(개 썰매꾼) 출신의 수의사와 신문기자, 응급구급대원, 간호사와 개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들을 엮는 매개체는 정체불명 전염병이다. 발병 이후 72시간 만에 죽는 이름 모를 전염병 속에서 살아남는 자가 되기 위한 이야기를 사람들 시선으로 혹은 개의 시선으로 작가는 감정 없는 문체로 적어 내려갔다.

다수 사람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일부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동물의 생명은 배려치 않으며, 참혹함 속에서 생존을 위한 인간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잊지 않고 그 비통한 시절에도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이기에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주위의 아픔에 난 눈 감았던 건 아닐까 후회도 든다. 소설 속 지하실에서 아무 도움 없이 죽어 간 많은 주인 잃은 개와 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시각장애 승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귓가엔 개썰매 휘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유정의 다른 책처럼 ‘28’도 잔상이 오래 남는다. 스릴 넘치고 박진감 있는 진행은 여름철 독서로 제격이다. 다만 나를 비롯해 이 책을 읽은 독자 모두가 피서뿐 만 아니라 나와 우리를, 그리고 모든 생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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