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제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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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 승인 2013.07.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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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지난 7월7일 아시아나 항공기가 샌프란치스코 공항에서 추락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항공기 사고는 발생률이 극히 적지만 한번 일어나면 대형 참사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사고는 초기 긴급대응을 잘해서 최소한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대형 재난 사고의 인명구조에 꼭 필요한 장비가 앰뷸런스이다. 앰뷸런스는 1792년에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앰뷸런스를 발명한 사람은 나폴레옹 부대의 종군외과의사 도미니크 장 라레이(Dominique Jean Larrey·1766∼1842)이다.

종군 병원은 병참부대로 후방에 주둔하기 때문에 많은 부상군인들이 너무 늦게 병원에 도착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초기 응급조치만 잘 했어도 살 수 있는 생명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비관하고 있던 라레이는 응급조치를 개선할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던 중 프랑스군 포병대를 진군하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철수시키는 것을 본 후에 라레이는 군사 책임자에게 ‘날아다니는 앰뷸런스’라는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포병대를 따라 전장에 들어가서 부상자들을 그 자리에서 치료하는 것이다. 라레이는 환자 두 명을 편안하게 운송할 수 있도록 말이 끄는 수레를 만들어 의약품과 의료기구들 그리고 응급 수술용 램프도 설치했다. 이것이 최초의 앰뷸런스이다. 이 장비로 많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물리적 장비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한 규칙이 있었는데 현대 긴급구조의 기본이 되는 ‘트리아제 태그(triage tag)’이다. 라레이와 그의 의료팀은 첫 번째 원칙으로 지위나 등급에 관계없이 부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했고, 두 번째는 사망할 가능성이 많은 환자보다 치명상을 입지 않은 환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했다. 이렇게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해 놓은 표시가 ‘트리아제 태그’이다.

윤리적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트리아제 태그는 대량사고 발생시 의료진이 도착하기 전 꼭 해야 할 긴급구호조치로 자리를 잡고 있다. 4가지 색으로 구분된 태그를 환자들에게 부착하게 되는데 그 의미는 이렇다. 검은색은 사망했거나 구호조치가 의미 없는 부상자에게 부착한다. 붉은색은 생명이 위험한 상태 즉 즉각적인 구호 조치가 필요한 부상자에게 부착한다. 노란색은 구호조치가 지체되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자에게 부착한다. 초록색은 경미한 부상자에게 부착한다.

의료진은 더 많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붉은색 태그를 부착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치료하고 후송하게 된다. 결국 붉은색 태그를 부착한 사람이 먼저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량인명 사고시에 붉은색 태그를 부착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이 붉은색 태그가 부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과 같이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 때에는 국가의 역량을 모아 치료해야할 경제·사회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권은 검은색 태그를 받아야 마땅하다. 국민들이 경제위기로 고통스러워하고 사회적 약자들은 신음하고 있는데, 고리타분한 이념논쟁과 정치싸움만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붉은색 태그는 서민들과 중소기업인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에게 붙여주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붉은색 태그를 빼앗아 자신들에게 강제로 붙이고 있다. 이렇게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위기극복 방법은 억울한 사람을 만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며 결국 모두가 실패하는 사회를 만들게 된다. 나만 살자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종용해서는 안 된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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