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쇠뜨기
향기 나는 쇠뜨기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7.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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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쇠뜨기가 깔려있는 논두렁을 걷는다.

어린 시절 내 손에는 쇠뜨기를 뜯어먹는 소의 고삐가 쥐어질 때가 있었다.

늦은 봄 해 넘어갈 때쯤이면 온종일 부려 먹은 소를 몰고 할아버지께서는 들로 나가신다. 옆에 따라가면서 칭얼대는 소리에 고삐를 건네주셨지만 소에게 끌려가는 나를 보며 이내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을 것이다. 바쁜 농사철 별로 놀이거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이 제각기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답시고 나갔지만 풀을 소에게 제대로 먹이는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소를 밭둑에 매어놓고 슬슬 장난기가 발동해 길가 양쪽에 수북이 올라오는 그령을 붙잡아 매 놓는다. 밭일을 마치고 무거운 지게에 한 짐을 지고 가는 어른들이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다가 호되게 혼난 철부지들이 그리운 날도 쇠뜨기는 여전히 푸르게 뻗어있다.

쇠뜨기는 개천가, 길섶, 흙에 꽂힐 수 있는 곳은 모두 비비고 나온다.

번식력이 얼마나 강한지 갓 쓰고 밭을 매고 지나가면 어느새 얼굴을 쏙 내밀고 “갓 쓴 놈 어니 갔냐?” 할 정도로 번식이 왕성한 식물이라나.

고향 후배 등단식에 갔었다.

이상하게도 주인공마냥 설레어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서성거렸다. 수몰 때문에 억지로 고향을 잃은 고향사람들을 만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늘 그랬지만 협회에서 주관하여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어느새 문인들이 모인 글밭이 쇠뜨기처럼 번식되어 뻗어 나가고 있다.

밭에 쇠뜨기를 뽑아내는 농부들은 뿌리가 하도 깊이 박혀 뿌리의 끝을 모르겠다고 귀찮아한다. 수년 전 지혈이나 이뇨 신장이나 암 치료에 효과가 좋다고 마구 갈아먹고 설사병이 나서 떠들썩했던 일이 생각난다. 쇠뜨기 즙을 먹을 때는 오이나 박을 함께 먹어야 탈이 안 난다고 하는데.

음성의 글밭에는 반 숙자 선생님의 뿌리가 쇠뜨기 뿌리처럼 깊이 박혀 있다. 글 쓰는 이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른다. 그의 삶을 소박한 글에 담아 명쾌하고 서정이 넘치는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여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내공이 보통이 아닌 스승님은 내가 흉내 내고 싶은 작가지만 어림도 없다. 이런 그의 잎줄기 마디마디 매달려 있는 회원들이 잘 섞여져 조화를 이루며 글쓰기에 노력 중이다.

여고 시절 글쓰기를 잘 해보려고 많은 시를 베끼고 소설을 읽곤 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은 작가나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의 덕목이라고만 생각했지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인 것 같아 바로 접었지만 후회되는 일이었다.

노트북 자판기 두드리는 습관이 몸에 배어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 닮고 싶은 글 솜씨를 흉내라도 내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책 읽기와 꾸준한 학습도 없이 무슨 글을 제대로 쓸 수 있겠는가? 쇠뜨기처럼 뿌리가 단단하지만 힘이 센 글보다는 향기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과 이속에서 몸담고 의지하고 문학의 향기가 영원히 펴져 나가는 글밭이기를 바라본다.

지금 논두렁에 깔려 있는 쇠뜨기가 햇살에 더욱 반짝인다. 밟지 않으려고 펄쩍펄쩍 건너뛰는 나의 모습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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