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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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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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았기에 해야 하는 일
윤 명 숙 <충청대학교수 논설위원>

대학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보니 종종 평가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대학 교수라는 직업의 전문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보다 외부의 영향을 덜 받아 객관적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얼마 전 국고 지원을 받고자 하는 기관들에 대해 평가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차기 연도에 차등 지원을 받게 되므로 피평가 기관으로서는 평가 기준에서부터 시작하여 평가 과정, 그리고 평가 결과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평가에 참여하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한 기관은 지난해에 현장 평가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이 기관은 그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그 영향력 또한 컸다.

그러나 평가를 하면서 소규모 기관보다는 이 대규모 기관에 대한 실망으로 화가 났다.

사실 이 기관 전체로 볼 때는 국고 지원금이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관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별도의 노력도 그리고 애정도 쏟지 않으면서 자사의 인프라만을 내세워 지원받으려고 아등바등했다. 게다가 명실공히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기관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최고의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내용으로 도배된 담당이사의 변에 이르러서는 몰염치에 대한 염증으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기관의 조직도 교육 과정의 개발보다는 교육생 모집에 중점을 두고 짜여져 있었다.

솔직히 '너무하다'를 넘어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괘씸죄에 해당하는 평가 항목이 없어 필자가 이성을 잃지 않고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평가는 끝났지만, 너무도 안타깝고 미련이 많아 필자는 그때 하고 싶었던 이 말을 아직도 되뇌고 있다. 그 큰 배를 갖고 있으면서 개울에서 물고기 한 마리 잡으려고 낚시꾼과 다투지 말고 저 넓은 바다로 나가 바다를 뒤덮을만한 그물을 던져보라고. 그리고 얼마나 많은 큰 배들이 어떻게 그들의 역할을 멋지게 해나가고 있는지를 보라고.

옛 소련 붕괴로 정부지원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던 '볼쇼이 극장'을 1991년부터 지속적으로 후원함으로서 지난해에 러시아인이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로 선정된, 그리고 이 시장에서 이 기업의 휴대전화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 전자를 보라고.

또 1999년 브라질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자 서둘러 이 시장을 철수한 일본 가전업체나 상파울로 축구클럽(SPFC)의 후원을 포기한 미국 전자업체와는 달리 이 시장을 꿋꿋이 지키고 오히려 SPEC의 후원을 자청함으로써 현재 TV, 휴대전화, DVD 플레이어 시장에서 1, 2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를 보라고.

이 기관들이 앞서 제시한 기관과 다른 점은 나름대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 가면서 주변의 이해 관계자들과 동반 성장을 모색하는 경영철학과 실천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것이 그 기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얻는 지렛대가 되며, 궁극적으로는 목표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내가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남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책임질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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