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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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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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신자유주의 시대의 부자와 하느님 나라
김훈일 <주임신부 초중성당 >

어느 마을에 부자가 있었다.

그는 지독한 구두쇠로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하루는 부자가 마을의 성인을 찾아가 물었다.

"내가 죽은 뒤에 전 재산을 불쌍한 이웃에게 나눠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구두쇠라고 미워합니까"

성인은 부자에게 돼지와 젖소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돼지가 암소를 찾아와 이렇게 하소연했다.

"너는 고작 우유만 주는데도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고, 나는 내 목숨을 바쳐 고기를 주고, 아주 좋은 요리가 되어 주는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지"

암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글쎄, 아마 나는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해 주고, 너는 죽은 뒤에 해주기 때문일 거야."

이야기를 다 듣고도 부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성인이 덧붙여 말했다.

"지금 이웃들 돕는 것이 나중에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보다 더 소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장 24절)"고 말씀하시며 부자와 하느님의 나라를 분리했다.

그렇다면 재물을 많이 모아 소위 부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던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욥도 이름난 부자들이었다.

하느님 나라에서 분리된 부자는 인색한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재산을 자신의 능력으로 얻은 절대적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재화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긴 것이다.

그 재화에는 나의 땀도 들어 있지만, 다른 이웃들의 땀과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우리의 소유물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활동이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도 이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한복판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과도한 국가개입과 복지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서구사회에 경제침체와 사회활력저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국가개입 축소와 시장경제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경제정책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보장, 불필요한 규제 완화 및 축소, 공기업 민영화, 작고 효율적인 정부, 세금 감축, 노동시장 유연화, 과도한 복지정책을 축소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임으로써 국부를 더 빠르게 더 많이 쌓으려고 하는데 있다.

즉 부자가 더 많은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단점은 자유로운 시장의 질서와 경쟁은 보장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층의 경제활동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아직 사회복지제도도 정착시키지 못한 나라에서는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피해가 곧바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지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인색하고 나눌 줄 모르며 경쟁의 논리로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부자들을 많이 만드는 경제정책이라면 그렇게 부유해지는 것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재물이 무한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깊이 깨달으며,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자신의 재화로 도움으로써 삶의 보람가지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자신의 부를 쌓아 이웃들의 귀감이 되는 부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자신을 통해서 이웃과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도록 많은 재물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자들이 많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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