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삶
들풀의 삶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13.06.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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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변정순 <수필가>

장마가 소나기처럼 하루 쏟아지더니 연일 무더위로 땅속이 야물다. 호미가 흙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아 손으로 풀을 뜯어내기로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풀을 뽑아줘야 예쁜 야생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갑을 끼고 잡초를 뜯지만 손끝이 아리다.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방동사니 네 가지 잡초밖에 모르던 때에 망초와 마타리의 어린 싹을 구별 못해서 망초만 남기고 뽑아버린 적도 있었다. 많이 발전한 것이지만 지금도 자주 헷갈려서 바랭이를 바지랭이라고 부른다. 바랭이는 참 억센 잡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실처럼 올라와 미처 손을 대지 못해 덩굴을 뻗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대책이 안 선다. 줄기가 자줏빛이 돌고 철사처럼 단단해지면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뽑을 수 있다.  

쇠비름은 얕보고 잡아당기면 잘 뽑히지 않고 뿌리부분에서 끊어진다. 검붉은 빛깔로 줄기가 변하여 있어 어릴 때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굵은 뿌리를 가운데 두고 맷방석처럼 퍼져있는 모습을 보면 경외스럽다. 뽑아서 며칠을 말려도 땅기운을 받으면 금세 뿌리를 내린다. 전에 할머니께서 밭을 매시면 “이놈의 풀은 뽑아도 뽑아도 또다시 살아난다.” 고 땅속깊이 묻으시는 걸 본적이 있다.

명아주는 또 어떻고. 쇠비름 보다 더 얌체 같다. 자꾸 뽑아내니까 이제는 포기사이에 살짝 숨어서 기다린다. 고목에 붙은 매미처럼 숨어 있다가 비만 내리면 단번에 날아오르듯 자란다. 어제까지도 안보이다 오늘 갑자기 나타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옆에 붙은 야생화 포기가 달려 나올까봐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잡아당긴다. 

방동사니는 봄에는 잘 보이지 않는 풀이다. 장마철이 지나면 야들야들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냄새가 특이해서 손에 묻으면 잘 씻어내도 저녁까지 간다. 여린 줄기와 잎을 곤충이나 동물들이 뜯어먹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인 것 같지만 좀 냄새가 지독하다. 이처럼 잡초들도 살아가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주어진 공간 내에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최적의 생활방식을 찾는다.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세를 늘려가는 바랭이, 다육식물의 기본을 철저히 지키는 쇠비름, 적절한 기회를 생장 기회로 삼아 최대한 활용하는 명아주, 냄새를 풍겨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동사니. 잡초들과 들꽃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종을 늘려나간다.

어쩌면 나도 지금의 생활이 들풀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생활을 원활히 하려면 인맥과 재력, 실력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한다. 위쪽으로만 줄기를 뻗는 이들이 있다. 튼튼한 줄이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인양 꼭 훔켜쥐고 놓지 않는 이들은 항상 먼저 치고 나간다.

하지만 뒤끝이 좋지 않아 항상 마음 졸이며 사는 모습이 바랭이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비교적 실력이나 재력이 없어도 천부적인 친화력이 있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인맥을 쌓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좋은 자산으로 언젠가는 자기 몫을 한다. 쇠비름처럼 퍼진 인맥은 뽑아서 말려도 절대 시들지 않는 저력이 있다.

부모의 덕분인지 남편과 내자의 내조 덕인지 부족함 없는 재력으로 항상 아웃사이더로 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건재함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다. 돈의 위력은 어느 것의 추월도 불허하니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들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명아주처럼 큰 그늘 뒤에 조용히 있다가 힘찬 돋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비슷하게 보여 진다.

실력 없으면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 돈도 없고 줄도 없으면 실력이라도 있어야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아 실력이 있는 냄새라도 풍겨야 존재를 기억하게 할 수 있으니 그의 삶은 방동사니 같은 삶이려나.

사람이나 잡초나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적응하며 사는 것 같다. 오늘 하찮다고 생각해온 잡초들을 뽑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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