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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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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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와 1000원의 가치
김병철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 인식된 돈에 대한 개념은 상당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난 지 오래되었다.

지난 시절에는 돈을 흔히 만져볼 수조차 없었던 가난한 시절이 있기는 하였지만, 요즘같이 돈의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보기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돈 1000원의 가치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된 달러의 가치를 비교 해보면 요즘 한국 돈 1000원의 가치가 평가절상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뇌리 속에는 1000원보다는 1달러를 선호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1000원 하면 대수롭지 않은 양 받아들인다. 1000원의 가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가는 형국이다.

일상생활속에서 1000원의 역할은 대단한데 말이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800원대의 교통비를 지불하고, 택시기본요금은 1800원인데 이 경우 1000원의 가치는 엄청난데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그렇지 않게 작용되고 있다.

현재 미화 1달러의 한국 돈 교환가치는 1000원을 밑돌고 있다.

그렇지만 1달러와 1000원 중에서 선택을 강요받으면 1달러를 선택할 경우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1000원에 대한 가치교육이 어려서부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 더 클 것이다. 1달러의 가치를 실천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홍콩의 거부 리자청(李嘉誠)은 골프장에서 1달러를 떨어트렸다. 헌데 손이 닿지않아 줍지 못하고 있을 때 골프장 직원이 이를 주워 주었다. 그러자 그는 1달러를 주워 준 감사의 표시로 200달러를 준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돈이 아니라면 누군가 1000달러를 내 집 앞에 놔둬도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그러나 내 돈이라면 1달러일지라도 떨어진 돈을 줍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귀중한 교훈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달러와 200달러를 비교할 때 200달러는 1달러의 200배이다.

그런데 그는 왜 1달러 때문에 200달러를 주저하지 않고 내주었을까.

그는 자신이 번 돈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벌어들인 1달러에 대하여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때 작아 보이지만, 그 작은 것이 바로 자신이 일구어 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되돌아보자.

그들은 돈에 대한 가치교육을 체험적이고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고 자라고 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사회 어느 곳에서도 어린이들에게 1000원에 대한 생산성과 가치를 가르치는 곳은 매우 드물다. 물질만능주의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스스로 흘린 땀의 짠맛을 아는 것이다.

돈 때문에 나타나는 인명경시풍조, 그릇된 허영심에 사로잡힌 부유층 여인들의 가짜명품 사재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그릇된 법 경시풍조 등 이는 우리사회가 만들어 낸 물질만능주의의 빠진 결과물들이다.

자라나는 어린들부터 식탁머리 경제교육을 부모들이 시작해야 한다.

그 다음 초등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계적인 경제교육 커리큘럼이 도입되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1000원의 가치를 깨닫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 아동복지와 사회복지는 그 맹아를 틔울 것이며, 우리사회는 아름다운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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