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텃밭
옥상 텃밭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6.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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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열무김치를 담갔다. 옥상에서 물 주어 기른 솔부추를 잘 씻어 양념과 함께 열무김치에 넣었다. 아주 잘 자란 솔부추다. 맛을 보니 제법 칼칼한 것이 시원하게 건져 만든 국수생각이 난다. 그 솔부추는 지난번에 한 번 베어 먹고 또다시 자라 두 번째 벤 것이다. 햇빛을 받고 자라고 있는 푸성귀들이 정성을 기울인 만큼 내게 기쁨을 준다. 남편과 함께 옥상을 오르내리며 키웠기에 더 정감이 간다.

우리 집 옥상에 방부목 상자로 작은 텃밭을 몇 개 만들었다. 태양광을 설치해 공간이 작지만 햇빛이 비치는 곳에 상자를 나란히 놓고 솔부추, 상추, 참나물, 고추, 깻잎을 심었다. 그리고 아침저녁 궁금해 꼭 한 번씩 그곳을 오른다. 요즈음은 옥상에서 자란 채소를 조금씩 뜯어 먹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내가 가꾼 채소가 식탁에 오르는 것이 이렇게 기쁜 것인지 미처 몰랐다. 퇴근 후에도 피곤하지만 꼭 한 번씩 찾아가 눈 맞춤을 한다. 시간이 흐르며 자라는 기쁨에 피곤도 모르고 열심히 물을 주고 어린 잡풀도 뽑고 거름도 주어 가꾸고 있다. 마음까지 기뻐진다. 삶의 염려들이 아침 안개 걷히듯이 모두 사라진다.

작은 마당에는 들꽃들로 발 딛는 곳만 빼고 틈이 없다. 가끔 텔레비전에 도시의 옥상 텃밭 모습이 나와 우리 옥상에도 푸성귀를 심어 유기농 채소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지난 4월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기가 심은 상추를 보러 틈새 시간이 있을 때마다 옥상을 오른다. 그러면서 더디 자라는 상추를 보며 걱정을 한다. 이웃집에서 함께 분양받은 상추인데 앞집에 심은 것이 훨씬 더 잘 자라는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급한 성격에 조금씩 자라는 것을 기다리자니 얼마나 애가 탈까. 그 때마다 그곳은 반그늘이기 때문에 상추가 연하고 크게 자란다고 여러 번 설명을 해 주었다.

흙에 부엽토를 섞어 꽃을 가꾸듯이 심었는데 어느 지인이 유기농 퇴비를 주어야 한다고 해서 퇴비도 한 포대 사다 놓았다. 남편이 처음에 꽃을 좋아하는 날보고 꽃대신 돼지고기 한 근과 비교 했었지만 이제는 바빠 심을 꽃을 심지 않고 두면 계속 이야기해서 얼른 심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느 정도 살아있는 식물에 대한 애정이 보이지 않게 싹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내의 생활을 보이지 않게 닮아가는 모습에 나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며칠 전에는 아들네 식구들이 왔다. 옥상에서 가꾼 상추와 뒤꼍에서 자란 곰취를 뜯어 목살을 구어 싸서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아들은 상추가 맛있다고 했다. 아마 햇빛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잎사귀가 크지 않지만 영양은 더 많은 것 같았다. 쌉쌀했다. 내 손으로 가꾼 채소를 식탁에 올려보니 기뻤다. 더구나 내 피붙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라 더 기분이 좋았다.

생명을 가꾸는 일은 어떤 일보다 더 보람 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가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자라는 과정이 마음에 기쁨을 주기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도 건강해진다. 늘 식물을 가까이 하다 보니 생명에 대한 관심이 마음을 다스린다. 그것은 정직하고 정확하기 때문에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식물을 기르는 것은 사람을 키우는 것과 같은 부분이 많이 있다. 때를 놓치면 안 되고 적기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게 되면 금세 병충해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라고 좋은 씨앗을 만든다.

옥상텃밭에서 귀여운 아기들의 자라는 모습을 되돌아본다. 건강하고 바르게 키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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