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새
뻐꾹새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6.0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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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뻐꾹, 뻐꾹’해가진 산언저리에 뻐꾹새가 운다.

그 소리는 잔잔한 내 마음 한곳을 파고든다. 귀를 기울일수록 애잔하게 들린다.

고향의 보리 싹이 파랗게 자랄 때 뒷산의 뻐꾹새는 마을을 고운소리로 가득 채웠다. 초록과 그 소리의 어울림이 잊히질 않는다. 노래 가사에도 많이 나오는 그 뻐꾹새가 요즈음 산책로의 야산 근처에서 아침저녁으로 운다. 지난시절이 한없이 그립다.

뻐꾹새가 울던 때 난 발령을 기다리며 푸르름으로 물드는 봄날을 조금은 부담스럽게 보냈다. 괜히 부모님에게 늦어지는 발령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부터 집안 청소를 하고 흙마당을 싸리비로 깨끗이 쓸고나면 5월의 푸른 바람이 열어 놓은 방문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어머니는 감잎이 피기시작하는 감나무 아래 푸성귀를 심어 열심히 가꾸셨다. 그리고 집안의 빈 터는 먹거리들로 가득했다.

불현 듯 그리워지는 날들, 20대 초반이였던 나는 집안 정리를 하고난 후의 시간을 라디오에서 흐르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지냈다. 책을 읽으며 멜로디 속에 푹 빠져 요즈음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힐링을 한 것이다.

그 때도 뒷산에서 뻐꾹새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 걱정도 사라지고 평안함으로 마음이 채워졌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삶이 풍요로웠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여유롭고 고운 감성으로 가득차 있던 날들은 손가락으로 꼽아 봐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클래식들은 거의 그때 들은 것들이 아닌가 한다.

‘고향의 봄’을 바이올린 연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마음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인다. 평범한 가사에 쉬운 곡이다. 그 연주를 들으며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보석처럼 고운 빛깔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여름밤의 때 묻지 않은 꿈처럼 감미롭고 멜로디에 슬픔이 묻어난다.

사람과 음악은 묘한 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런 자연의 소리를 악기로 표현한 것이 흐르는 선율인데 왜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뜨거워지는지, 음악은 보이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못 울리는 마음을 음악은 멜로디를 통해 마음을 사로잡고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한다. 아마 의사도 그 원인은 찾지 못할 것이다.

뻐꾹새 소리엔 고향이 있고 지난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도심지 주변의 낮은 산에서 우는 소리는 삶에 찌든 때를 신선함 속에 말끔히 씻어준다.

어미 소가 송아지와 함께 풀을 먹던 곳, 그곳에서 뛰놀던 유년의 기억이 새롭다.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고향언덕, 읍내 간 어머니를 기다리던 성황당 가는 길, 모두 추억속의 그림이 되었다. 그 때 그 부모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고 소풀 뜯던 언덕에서 놀던 어린 것들이 자라 이제 이순이 넘어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뻐꾹새는 때까치나 지빠귀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까게 하여 새끼를 길러내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그 소리만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그리고 맑은 소리로 내 생활에 새힘을 갖게한다.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뻐꾹새소리는 변함없이 고향뒷산에서 울던 소리 그대로이다. 그리운 고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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