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절
행복한 시절
  • 이묘신 <동화작가>
  • 승인 2013.05.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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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묘신 <동화작가>

요즘 나는 초등학생들을 만나러 다닌다. 동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시인이 된 이야기로 만남을 시작하는데 그럴 때면 꼭 엄마 이야기를 한다.

텔레비전이 없던 어린 시절, 잠자기 전의 나는 참 행복했다. 엄마는 자기 전에 늘 시조를 들려주셨다. 낮에 농사일을 하느라 피곤하셨을 텐데도 엄마는 시조 들려주는 걸 잊지 않았다. 엄마가 먼저 시조를 읊으면 나는 또박또박 따라했다. 나중에는 엄마랑 같이 입을 맞추며 시조를 읊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잘 한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다.

또 엄마와 나는 ‘동네사람 이름외우기 놀이’도 즐겨했다. 지금 생각하면 기억을 시험하는 놀이였지만 나는 아주아주 즐겁게 했다.

“경자 엄마 이름은?”

“김정순.”

“주희 할머니 이름은?”

“이청자.”

“연순이 할머니 이름은?”

“조기둥.”

엄마가 물을 때마다 나는 동네 아줌마랑 할머니들 이름을 댔다. 우리 딸 참 똑똑하다, 라고 엄마가 해주시면 나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환히 웃었다. 이런 놀이를 하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어릴 적 이런 시간들은 내 감성을 키웠고, 사물을 따뜻하게 보는 시인이 되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런데 내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만들어주신 엄마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자꾸만 아프시다. 작년에는 다리 관절수술을 받으셨다. 수술한 다음 날 병실에 들어서는데 엄마 얼굴이 부어있었다.

“아이구, 엄마가 너무 아픈지 밤새 엄마를 찾아서 잠도 못 잤어.”

같은 병실 아줌마 말을 들으며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미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인데도 엄마는 밤새 외할머니가 생각났던 것이다. 아마 외할머니가 계셨다면 따듯하게 이마도 만져주고, 손도 잡아주셨을 것이다. 병문안 왔던 외삼촌과 이모도 외할머니 얘기를 하며 울먹였다. 간병인 아줌마도, 병실에 있던 환자들도 괜시리 눈물을 글썽거렸다.

엄마라는 이름은 아플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다. 엄마를 부르면 고통을 줄여주기도 하고 슬픔을 거두어가기도 한다. 나 역시 아플 때면 �:� 앓으며 나도 모르게 엄마를 부른다. 그러면 아픔이 조금 가시는 듯하다.

한번은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고. 엄마는 잘못한 것만 기억난다고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참 잘 하셨는데도 말이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 나는 엄마에게 정말로 잘하고 싶다. 엄마를 더 오래오래 떠올리려고 엄마랑 하고 싶은 일들을 수첩에 썼다. 엄마랑 온천가기, 영화 보러가기,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가기, 새로운 음식 먹으러 다니기….

이제 며칠 후에 또 초등학생들을 만나러 간다. 거기에서 나는 시조를 읊고, 동네사람 이름외우기 놀이를 하던 행복한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신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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