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母性), 그 이름만으로
모성(母性), 그 이름만으로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13.05.27 2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어머니께 발마사지를 해드리기로 약속한 날이다. 거실에 요를 깔고 누워계신 어머니의 야윈 모습을 바라보자니 시작도 하기 전에 눈가에 뿌옇게 안개가 서린다. 손바닥에 감겨오는 발과 다리는 마른나무를 만지는 듯 앙상하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순간 나의 알량한 발마사지 재주가 원망스럽다.

오늘 나는 효도를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어머니의 다리를 어루만졌을 때만 해도 스스로 얼마나 오만했던가. 발을 주무르고 종아리를 지나 무릎을 손바닥으로 감싸는데 어머니의 육신은 가는 바람에도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가랑잎처럼 변해있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어머니의 나이를 잊고 살았다는 게 옳을 듯싶다. 그래서였을까. 어이없게도 어머니를 무쇠처럼 단단한, 어떤 풍파에도 허물어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분인 줄만 알았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강건하시기도 했지만 매우 현명한 분이었다. 언젠가 딸 국 질이 몹시 심해 멈추질 않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고생하는 내 모습을 측은한 듯 바라보시던 어머니, 뜬금없이 외할아버지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존함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난데없이 기억도 희미한 외할아버지의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더니, 언젠가 할아버지 존함을 말해준 적이 있으니 잘 생각해보면 기억날 거라며 더욱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웃으시며 “우리 딸 이젠 딸 국 질 안하네.”하시는 거였다.

깊은 생각에 빠지면서 딸 국 질하는걸 망각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딸 국 질이 멈춘 거였다.

나도 일회성이지만 큰딸이 딸 국 질할 때 요긴하게 써먹어 톡톡히 효과를 본 방법이다. 이렇듯 어머니는 모든 일에 사려가 깊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아홉 살 때 가족들 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셨다. 그때부터 육남매와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편하게 쉬는걸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봄이면 담배농사를 시작으로, 찐득거리는 담배 잎과 씨름을 하며 보내고 논농사에 밭농사까지 짓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틈틈이 열무도 가꿔 가게에 내다 파시기까지 했다. 가끔 학교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열무를 머리에 가득이고 오시는 어머니와 마주쳤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에 인 무거운 열무 보따리처럼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원망으로 변한 것도 그때부터였지 싶다.

어머니에게도 꽃처럼 고운시절과 푸름을 자랑하던 젊은 날이 분명 있었을 터였다. 뼈마디 마디에서 그동안 힘겨웠을 어머니의 지난날이 아픈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통해 내 가슴을 두드린다. 너무도 이기적인 나는 두 아이의 어미가 되고 불혹을 훌쩍 넘겨서야 어머니의 쇠잔한 육신의 외침을 들으며 마음으로 통곡한다.

육남매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모성이라는 이름이 아니었으면 이모든 희생과 헌신이 가능했었을까.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나는 내 자식들을 위해 숭고한 어머니의 모성을 감히 흉내라도 내며 살아가고는 있는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