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향기
라일락 향기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5.0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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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눈 안으로 달려드는 곳곳은 초록으로 싱그럽다.

도심지 주변 도로를 따라 가장자리에 줄지어 서 있는 느티나무도 연초록 새잎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 빈 가지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더니 잔가지에 새순이 돋았다. 푸른빛으로 오월 하늘을 덮고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이 고운 계절이 오면 생각나는 꽃이 하나 있다.

5월 어느 날 중학교 2학년 음악 시간이었다.

선생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고 있을 때 열린 창으로 향긋한 내음이 날아왔다. 창밖을 보니 자잘하게 핀 연보랏빛 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무슨 꽃일까. 어떤 꽃이 냄새가 그리 감미로울까. 쉬는 시간에 그 나무 주변에 가 보았다. 라일락의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름표 아래 칸엔 ‘젊은 날의 추억’의 꽃말이 적혀 있었다. 꽃말을 음미해보니 참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라일락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 터에 꽃을 많이 키우는 분이 있었다.

그때도 꽃이 좋아 봄이면 꽃구경을 하러 가곤했다. 모란 꽃, 명자나무, 해당화, 불두화, 그리고 큰 나무 끝에 소복하게 모여 핀 냄새 좋은 꽃, 여러 가지 였다.

그 냄새 좋았던 꽃이 라일락이었다. 하루는 그 집에 찾아가 옆에 새 가지가 올라온 것을 분양받아왔다. 우리 집 뜰에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해가 지나갈수록 라일락은 모종을 중심으로 잔가지를 많이 쳐서 작은 싹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것을 주변에 두었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한번은 내가 초임지에 근무할 때 산 중턱에 사는 장로님 댁에도 나누어 주었다. 청주에서 제천이 먼 거리였지만 동생에게 이야기했더니 나에게 다녀갈 때 한 뿌리를 캐어 그 댁에 주었다. 그곳에는 내 또래의 딸이 하나 있었는데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주말 집에 가지 않을 때는 그곳에 자주 놀러 갔었다. 내가 4년이 넘게 그곳에서 근무하고 떠나게 되어 인사를 하러 산 중턱으로 갔더니 라일락 나무가 제법 많이 자라있었다. 이월 말이라 잎이진 라일락은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고 가지 끝에 두터운 꽃눈만 이른 봄의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년 동안은 가끔 라일락 이야기를 하였다.

라일락은 감미로운 향기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꽃 모양은 볼품없지만, 향기는 연인들의 사랑처럼 달콤하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 희망원 정원에 있던 보라색 라일락, 5월이면 음악실 열려진 창으로 날아오던 내음, 소녀들을 설레게 했다. 예쁜 음악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와 푸른 정원, 분수대 안에 노니는 잉어들, 그리고 푸르름 속에 이는 바람, 50년 가까이 되었지만 내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세월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나 이런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것도 5월이 주는 선물이다.

다시 푸르른 오월 라일락 향기 속에 추억이 묻어나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던 그 시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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