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봄비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4.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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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메말랐던 땅에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며칠 전 바람에 먼지가 뽀얗게 일더니 어제저녁부터 생명의 단비가 새싹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보랏빛 깽깽이풀, 노란 수선화, 분홍빛 히아신스, 하얀 진달래꽃, 빨간 매화 봄비를 머금어 싱싱하다.

구절초 꽃 모종을 옮겨 심고 기다리던 비라 더 사랑스럽다. 우리들의 삶에 활력을 주는 봄비. 참 감사하다.

아침 산책길에 우산을 들고나갔다.

밤새 내린 비로 산책길은 촉촉하다. 흥덕사지 가는 길의 산언덕은 비에 젖어 샛노랗다.

노란 폭포수 같은 개나리의 꽃물결도 봄비에 젖어 길게 늘어진 그 모습이 더 곱다.

막 움이 트기 시작하는 병아리꽃나무와 단풍나무가 지난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고왔던 늦가을의 정취 속에 거닐던 산책길, 유난히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 초여름 초록빛잎새 사이에서 하얀 꽃을 피웠던 병아리꽃나무, 모두 나의 벗들이다.

봄비가 내리는 아침이라 그런지 걷는 이가 아무도 없다.

새순이 트는 나무와 가끔 들리는 산새 소리, 그리고 방목화분에서 긴 겨울을 이기고 돋아나는 야생초의 어린싹들, 걷는 이가 없어도 적적하지 않다. 그들 모두가 살아있으니 나와 함께 숨을 쉬고 있음이 아닌가.

자연은 봄비를 맞으며 온통 축제의 도가니다.

마른 잔디를 비집고 나오는 잡초들, 소나무 아래 곱게 핀 진달래, 어디서 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았는지 민들레까지 함께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이유 없이 마음에 희열 같은 것이 인다.

그냥 넉넉해지고 무엇인가 막 솟아나는 샘물처럼 셀레임으로 가득하다.

어제저녁 일기예보의 소식은 많은 비와 광풍이 분다고 텔레비전의 자막과 뉴스를 통해 여러 번 보도됐다.

아직 보도된 것과는 달리 순하게 봄비도 내리고 바람도 잔잔해 안심은 된다.

봄비는 생명이 있어 잠자던 사물들을 모두 깨워 일으킨다. 땅속에서 잠자던 씨앗들도 봄비를 맞으며 움이 트고, 바람에 흔들리던 느티나무에도 새순이 돋는다.

잠자던 생명을 깨우는 봄의 전령사, 봄비이다. 늦잠이 들어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오를 때 흔들어 깨우던 어머니 같다.

봄비는 소리 없이 속삭이며 산천초목을 흡족하게 적셔준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듯, 산과 들에 있는 초목들도 모두 다르다.

편협한 사람들과는 달리 봄비는 산과 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도시까지 공평하게 적셔준다. 뜰의 꽃나무들도 봄비를 맞고 더욱더 싱그럽다. 가물어 쌓였던 먼지도 모두 봄비에 씻겨 산뜻하다.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입구에 겨우내 말려 있던 큰 비단일엽의 잎사귀가 봄비를 맞고 긴 잎을 펼쳤다.

봄비를 머금고 새로운 삶을 다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물이 봄비를 맞고 깨어나듯이 우리의 삶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이 봄비가 그치면 우리에게도 밝은 햇살과 봄볕처럼 따뜻한 사랑이 가득하였으면 좋겠다. 실 같은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사람들의 삶이 봄비를 맞고 자라나는 새싹처럼 나아졌으면 얼마나 기쁠까. 하루속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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