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집착증
경험 집착증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3.03.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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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심리학자 류틴스는 같은 방법으로 풀 수 있는 수학문제를 다섯번 내고, 여섯번째부터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냈다. 피험자들이 몇 번째부터 새로운 방식(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푸는지를 알아보려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여섯 번째부터 제시한 방법으로 문제를 푼 피험자는 몇 안 됐다. 즉, 피험자들은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기보다 여러 번 경험한 바 있는 전자의 어려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인간의 ‘경험 집착’에 대한 실험으로 과거의 경험이 사고의 융통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경영학에서 거론되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간부일수록 사고의 융통성이 없을 수 있다’라는 부분이 이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심리학자 크리스 라반에 따르면 경험 집착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거나 해 온 방법이 가장 적절하며, 최상의 것으로 독단한 나머지 그 방법만을 고집하고 그것을 아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났을 때의 경험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서 그 경험에서 비롯되는 암시의 지배를 심하게 받는다. 그리하여 그 방법(경험)이야말로 최상의 것이라고 단정한 나머지 사고의 융통성을 상실해 버리고 경험 집착적이 된다.

라반에 의하면 경험 집착적 사람들은 유머가 결여 되어 있고, 글자를 쓰는 자순(字順)이나 예의 등 형식을 갖추는 일에 매우 까다로우며, 언제나 자신의 견해나 사고방식을 팀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동의해 주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많이 하는 특징이 있다.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과거의 유사한 경험이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에도 전에 경험한 패턴을 현재의 상황에 꿰어 맞추려 한다. 그리하여 과거의 기억·관념·감정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개입시켜 현재의 경험을 회피·왜곡시키는 현재성(現在性) 결여, 특정한 지각·생각·의도에 의해 의식이 지속적으로 점유되어 현재 경험하는 현상에 대해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시각이나 태도를 고집하는 유연성(柔軟性) 결여, 자신이 경험하기 싫은 것과 경험하고 싶은 것을 분별하여 싫은 현상은 애써 회피하려고 하고 반대로 좋은 현상은 애써 붙잡으려고 하면서 직면한 상황에 대해 담담하고 초연하지 못하는 초연성(超然性)이 결여된 업무처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험 집착적인 사람은 ‘이 방법이 아니고는 마음이 안 놓인다’는 나름의 이유도 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자기의 경험보다 훌륭한 경험자가 팀원 중에서 나타나는 걸 두려워하는 면이 있다. 결국 이런 유형은 팀원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보다 팀원이 언제까지나 자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심층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고의 전환은 정신적 유연성의 증거이다. 혹시 인생 40년 즈음에 고집불통, 고래심줄, 황소고집, 편견 덩어리, 고리타분한 인간, 엉덩이 질긴 놈, 광신자, 독선가, 너그럽지 못한 인간, 미련한 인간, 교조주의자 등과 같은 말을 듣는 이가 있다면 경험 집착형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면 구원의 빛이 보이고 변화의 필연성을 깨달으면 해결책이 보이며 혁신적 대안을 택하면 궁지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린다. 새로운 경험을 앞두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아프락사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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