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평화와 진정한 전쟁
한반도의 평화와 진정한 전쟁
  •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 승인 2013.03.1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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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훈일 <문의성당 요한 주임 신부>

국어사전에서 평화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폭력과 전쟁이 없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현대 평화학의 선구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의 개념을 논하면서도, 단지 전쟁이 없다는 의미의 평화를 소극적 평화라고 하고, 이에 반해 행복과 복지와 번영이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의 평화를 적극적 평화라고 말한다. 폭력과 전쟁이 없이 조화로운 상태에서 더 나아가 개인, 집단간에 대화와 타협이 있는 건강한 관계, 사회경제적 복지에 의한 번영, 평등의 구현, 모두의 진정한 이익에 충실한 정치적 질서를 구현해야 진정한 평화가 정착된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적극적 평화의 개념으로 평화를 한자로 해제해 보면 평화의 의미가 새롭게 드러난다. ‘平和’는 공평하게(平) 쌀(禾)을 나누어 먹는(口)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 평화는 욕심을 버리고 수양을 하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타자와의 관계에서 평화는 질서와 조화가 필요하다. 성경에서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나 서구권에서 평화라는 말의 모태가 되는 라틴말 pax에는 질서와 조화, 협약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공동체 안에서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가, 집단과 집단 안에서는 상생과 공동선이 평화의 필수적 요소이다. 공존을 위한 노력과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는 평화는 강압된 질서로 포장됐으나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거짓 평화일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정으로 지금 한반도는 전쟁을 걱정하고 있다. 북한은 연일 반발을 하며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처럼 격앙돼 있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공존과 번영을 모색할 시기에 오히려 60년 전에 참혹했던 전쟁을 다시 벌이려고 하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 민족이 다시 어리석은 전쟁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지난 5년간 북한의 나쁜 행동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대립과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결과가 공멸의 전쟁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타자와의 평화는 상대적인 것이다. 경제의 실패와 지도자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사회를 강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지 않고 망하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전쟁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일어나야 할 진정한 전쟁은 대화와 공존을 버리고 정복욕과 지배욕에 빠진 우리 내면과의 전쟁이다. 전쟁이 가져올 파괴와 불의에 대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바뀌는 것이며,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이며, 인간에 대한 잔인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슬픈 현실은 남이든 북이든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과 분노가 더 큰 죄악을 부르고 있다. 그 사악한 마음과 싸워야 한다. 더 이상 북한 정권을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과 싸워야 하고, 그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과 싸워야 한다. 북한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집단이고, 악하다는 생각과 싸워야 한다. 또한 그들의 굶주림과 비참한 상황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과 싸워야 한다. 이런 싸움을 충분히 한 후에 전쟁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증오와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60년을 했지만 용서와 이해를 실천하는 일은 이제 막 시작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북한이 격앙되어 못할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인내하고 참으며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심어주자. 우리는 훌륭한 민주주의 체제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칼을 들고 망만 보지 말고 문을 열고 나아가 대화를 시작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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