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보다 긴 것
강물보다 긴 것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3.04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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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상 강(江) 이름 중에 싱겁기로는 아마도 중국의 장강(長江)이 으뜸일 것이다. 나일 강,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 3위의 길이를 자랑하는 이 강은 6,300킬로미터의 여정을 거쳐 바다에 이르니, 과연 길기는 길다. 그렇기로서니 이름까지 긴 강(長江)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을까 이렇게 싱거운 이름을 가진 장강(長江)보다도 더 긴 것이 있으니, 사람 마음속의 정이다. 하고 많은 정 중에서도 애틋한 이별의 정이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이별의 정이 얼마나 긴 지를 강에 비유해 말하고 있다.

 

◈ 금릉 술집에서 헤어지다(金陵酒肆留別)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봄바람 불어와 버들 꽃향기 객사에 가득하고

吳姬壓酒喚客嘗(오희압주환객상)

이곳 오 땅의 아가씨들 술 걸러 손님에게 맛보라 권하네

金陵子弟來相送(금능자제내상송)

금릉의 젊은이들 나와 서로 이별하면서

欲行不行各盡觴(욕항부항각진상)

떠나려 하나 차마 가지 못하고 각자 술잔만 비우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그대에게 청하노니, 동으로 흐르는 강물에 물어보게나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이별하는 마음과 강물 어느 것이 더 긴 지를

※ 금릉(金陵)은 지금의 난징(南京)으로 장강(長江)이 지나는 길목이다. 시인은 금릉(金陵)의 한 객사(客舍)에서 어디론가 떠나며 지인(知人)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이러한 이별 장면에 빠지지 않는 것이 버드나무(柳)이다. 류(柳)는 중국어 발음으로 리우(liu)인데, 머무른다는 뜻의 류(留)도 리우(liu)로 발음이 난다. 그런데다 버드나무가 우연히 이별의 장소에 많이 있었던 것도 버드나무가 이별의 상징이 된 계기가 된다. 한(漢)과 당(唐)의 시기에 이별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던 곳은 장안(長安)의 동쪽 교외(郊外)에 있던 파교橋)라는 다리였다. 이 다리 밑을 흐르는 물이 파수水)라는 강인데, 이 강의 언덕에 버드나무(柳)가 줄지어 있었다. 장안(長安)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전송 나온 지인(知人)들과 헤어지곤 했는데, 이때 전송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사람들에게 이별의 정표로 주던 것이 바로 버드나무(柳) 가지였다. 보내기 아쉽다는 의미로 머물 류(留)와 발음이 같은 버드나무(柳) 가지를 주었던 것이다. 시인과 그를 배웅 나온 지인(知人)이 이별 차 들른 금릉(金陵)의 객사(客舍)에 버드나무 냄새가 가득한 것은 곧 닥칠 이별을 암시한다. 어여쁘기로 유명한 오(吳) 땅 출신의 아가씨들은 곧 닥칠 이별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을 거르면서 호객(呼客)에 바쁘다. 이러한 무심함이 이별의 슬픔을 더욱 북돋운다. 시인 일행 말고도 이별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이별하는 금릉(金陵)의 젊은이들은 이 객사(客舍)에서 그 의식을 치르면서 이별주를 나누어 마신다. 이젠 떠나야지 하면서도 차마 가지 못하고 또 한잔을 마신다. 이것이 이별의 장면인 것이다. 아쉬움을 떨치며, 마지막으로 시인이 지인(知人)에게 청한 것은 술이 아니다. 금릉(金陵)을 관통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장강(長江)에게 무언가를 물어 보라고 청하였다. 시인 자신의 석별의 정이 길기로 유명한 장강에 비해 어떠한 지를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장강(長江)은 상하이 앞바다에서 긴 흐름을 멈추지만, 이별의 정은 평생 그 흐름을 멈추지 않으니, 길이에 있어서는 장강(長江)보다 한 수 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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