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건만
봄은 왔건만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2.2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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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날짜로는 분명 봄이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봄이 아니다. 날이 여전히 추워서도 그렇고, 뒷산 눈이 녹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사람의 관념상 도무지 봄 같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꽃이며, 풀이며, 새 같은 것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봄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초목이 무성한 땅에 살다가 졸지에 풀 한포기가 아쉬운 삭막한 곳으로 가서 살게 된 사람에게 봄이 과연 느껴질까 그런 사람에게는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것이 초당(初唐)의 시인 동방규의 외침이다.

◈ 왕소군의 원망(昭君怨)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흉노 땅엔 꽃과 풀이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옷에 맨 허리끈이 느슨해짐은 저절로 그러한 것이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허리와 몸 때문만은 아니라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단가(短歌) 사철가의 첫 대목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꽃으로 봄을 느낀다. 시의 주인공인 왕소군(王昭君)은 봄꽃이 만개한 장안(長安)의 궁궐에서 삭막한 흉노(匈奴) 땅에 보내졌다. 철은 분명 봄이었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봄을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꽃과 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몽고 일대인 흉노(匈奴) 땅은 물 주변에 듬성듬성 풀이 보일 뿐 꽃은 찾아 볼 수 없다. 꽃밭에 묻혀 살던 왕소군(王昭君)에게 이러한 모습은 너무나 생소하였던 것이다. 한(漢) 원제(元帝)의 궁녀(宮女)였던 왕소군(王昭君)은 궁녀(宮女)들의 초상(肖像)을 그려 황제에게 바치는 일을 하던 화공(畵工)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대가로 실물보다 미운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어 황제를 시침(侍寢)할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하던 차에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화친(和親)의 대가로 보내지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평소 초상(肖像)을 보고 시침(侍寢) 들 궁녀(宮女)를 고르던 황제는 밉게 그려진 왕소군(王昭君)을 그녀가 궁궐에 든 5년 동안 한 번도 점찍은 적이 없었다. 흉노(匈奴) 땅으로 보내지는 날 처음으로 황제는 그녀의 실물을 직접 보고는 눈을 의심하였다. 초상(肖像)으로 보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천하의 절색(絶色)이었던 것이다. 화가 난 황제는 자신을 속인 죄로 화공(畵工) 모연수(毛延壽)의 목을 잘랐지만, 왕소군(王昭君)을 자신의 곁에 잡아 둘 수는 없었다. 졸지에 비련의 주인공이 된 그녀는 몸도 마음도 한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보내진 곳이 꽃은 고사하고 풀싹도 보기 드문 데다 보니, 그녀에게 봄이 느껴질 리가 있었겠는가? 가련한 신세에 삭막한 풍토까지 더해지자 왕소군(王昭君)은 하루하루 몸이 야위어 갔다. 시인은 몸이 야위는 것을 의대(衣帶)가 헐거워진다고 에둘러 표현하였다.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은 흉노(匈奴) 땅에서는 저절로 그렇게 되게 돼 있다. 몸이 아프고 허리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흉노(匈奴) 땅에 꽃과 풀이 없어서 봄을 느낄 수 없고, 봄을 느낄 수 없어서 몸이 야위고, 몸이 야위어서 결국 의대(衣帶)가 헐거워진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이런저런 이유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불편한 심기(心氣)를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아무리 봄 같지 않은 봄이라도 겨울보다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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