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우성(立春偶成)
입춘우성(立春偶成)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3.02.11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계절은 어김이 없다. 좀처럼 사그라질 것 같지 않은, 혹한(酷寒)과 폭설(暴雪)로 무장한 동장군(冬將軍)의 위세도 절기(節氣)가 바뀌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한다. 양력으로 2월 초에 맞는 24절기(節氣)의 첫 절기(節氣)인 입춘(立春)이야말로 동장군(冬將軍)에게는 숙명적인 천적(天敵)인 셈이다. 대지의 전장(戰場)을 거침없이 내닫던 동장군(冬將軍)은 조물주(造物主)가 춘(春) 자(字)가 새겨진 표지(標識)를 집어 세운(立) 순간부터는 퇴각(退却)을 시작하여야 한다. 이처럼 입춘(立春)은 봄(春)의 표지(標識)를 세운다(立)는 뜻이다. 조물주(造物主)의 지시에 따라 대지는 새로운 주인공을 맞아들인다. 눈과 추위가 겨울 대지의 주인공이었다면, 봄의 주인공은 풀과 꽃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교체는 조물주(造物主)의 지시에 의한 것이고, 그 지시 방법이 바로 봄 세우기 즉 입춘(立春)이다. 송(宋)의 시인 장식(張)이 쓴 시(詩)에 이러한 입춘(立春)의 의미가 엿보인다.

◈ 입춘에 우연히 짓다(立春偶成 )-장식(張식)

律回歲만빙霜少(율회세만빙상소) : 계절이 돌아 해 늦어 얼음과 서리 녹아

春到人間草木知(춘도인간초목지) : 봄이 세상에 온 것을 풀과 나무도 알았도다.

便覺眼前生意滿(변각안전생의만) : 눈앞에 싱싱한 기운 가득함 문득 깨달으니

東風吹水綠參差(동풍취수록참치) : 봄바람 강에 불어 녹음이 들쑥날쑥하도다.



※ 절기(節氣)의 바뀜에 정해진 율(律)이 있다. 그에 따라 절기(節氣)가 돌고 돌아(回) 한 해가 저물고, 입춘(立春)이 도래(到來)한 것이다. 조물주(造物主)가 춘(春) 자(字)가 선명히 찍힌 표지(標識)를 세운 순간부터 세상은 봄이다. 얼음과 서리가 적어진 것이 그 징표이다. 그러나 아직은 겨울의 여운(餘韻)이 너무 짙어서, 사람들은 봄을 실감하지 못한다. 봄이 왔다지만,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이백(李白)의 탄식도 같은 선상에서 나온 것이리라. 둔감한 사람들만 느끼지 못할 뿐, 이제는 엄연한 봄이라는 것을 풀과 나무는 알고 있다. 무대 밖에서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고대하던 배우처럼, 풀과 나무들은 그들의 감독인 조물주(造物主)가 춘(春)의 표지(標識)를 세워 큐싸인을 보내자 망설임 없이 무대에 오른 것이다. 시인으로 하여금 문득 봄이 왔음을 깨닫도록 한 것은 그의 눈앞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타난 풀과 나무이다. 비쩍 말라붙어 보이지 않던 풀과 나무가 갑자기 눈에 띈 것은 풀과 나무에 생기가 가득 돌았기 때문이다. 바람도 방향이 바뀌었다. 부지불식간에 북풍(北風)이 동풍(東風)이 된 것이다. 삭막한 한기(寒氣) 대신 포근한 온기(溫氣)를 품은 동풍(東風)이 불면 시내(川)는 서서히 겨울의 얼어붙음으로부터 벗어나 유연한 흐름의 자태를 되찾는다. 물가의 풀과 나무도 덩달아 신이 난다. 새파란 빛깔이 몰라보게 불쑥 자라난(綠參差) 것이다. 풀과 나무에 물기가 오르고, 동풍(東風)이 불어 얼었던 물이 흐르고, 새파랗게 풀이 불쑥 자라는 것은 모두 조물주(造物主)가 춘(春) 자(字)가 새겨진 표지(標識)를 세움, 즉 입춘(立春)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감독의 연출에 따라 움직이는 무대 예술 쯤으로 보고 있는 데서 유래한 입춘(立春)이라는 절기의 명칭은 다가오는 봄만큼이나 따사롭고 여유가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과 같은 입춘첩(立春帖)은 사람들이 조물주(造物主)에게 보내는 희망 편지에 다름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