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의 행복
5000원의 행복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3.01.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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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지난주 흥덕사지 둘레 길 산책 후 옆에 있는 공예관에 들렀다. 전시된 공예품을 감상하는데 도자기로 만든 꽃병에 눈길이 멎었다. 수작업으로 만든 꽃병에 꽃을 꽂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한 점을 구입했다. 외모는 볼품없었지만, 주둥이가 작은 것이 뒤뚱거리는 오리 같다.

퇴근길에 꽃집에서 후리지아 한 단을 샀다. 강추위로 꽃값이 많이 올라 아주 작은 단 하나가 6000원이다. 주인은 단골이라 1000원을 빼주어 오천 원을 받았다. 식탁에 구입한 꽃병에 꽂아 놓으니 생기가 돈다. 겨울이지만 봄을 느낄 수 있었다.

꽃에서 사람에게 전해지는 정서는 꼬집어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작은 풀꽃이 아름다운 향기로 사람을 부른다. 코에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으니 꽃 내음이 은은하다. 야단스럽지 않고 오월에 핀 싱그러운 아카시아 향기 같다.

꽃을 좋아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겨울에도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개울가로 갔다. 그곳에 가면 움이 트지 않은 버들가지를 꺾을 수 있었다. 버들가지는 황토산개울 주변에 많이 있었다. 흰 눈 속에서도 진한 갈색의 나무줄기가 뻗어 있다. 그 가지엔 통통한 꽃눈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시린 손으로 가지를 꺾어 유리병에 꽂아 키우던 일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 아직도 마음이 설렌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원예를 전공했으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내 삶이 가꾸어졌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가끔 꽃을 사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남편은 여유가 있어서 좋다고 한다. 그 말이 때로는 비정하게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다른 것에는 별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화장품이나 옷 같은데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결혼 초 작은 사글셋방에 살 때다. 퇴근길에 핑크색 카네이션이 매우 예뻐 이천 원을 주고 사왔다. 남편은 ‘돼지고기 한 근을 사오지, 그럼 찌개를 끓여 먹을 수 있을 텐데’ 그 말이 아직도 난 잊히질 않는다. 신혼살림을 막 시작할 때라 꽃을 사들고 들어오는 아내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식탁에 있는 하얀 후리지아는 오므린 봉오리를 열어 고운 향기를 전한다. 눈처럼 하얀 꽃송이의 속을 들여다보니 노란빛이다. 그곳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는 겨울 추위를 녹이고 내 마음을 봄날 어느 들판으로 인도한다.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보랏빛 제비꽃에 노랑나비가 너울거리는 초원으로.

삭막하던 집안 분위기가 흰 후리지아로 살아나며 가라앉은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집안일을 하다 식탁에 와서 얼굴 한번 후리지아에 대보고 꽃과 눈 맞춤도 하니 지루하지 않다.

겨울에 고운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삶은 마음 갖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즐거움과 서글픔이 공존한다. 마음에서 욕심을 빼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오천 원의 후리지아 한 단은 덤덤했던 일상에 신선한 기쁨을 주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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