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라는 마법
변화라는 마법
  •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2.1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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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태종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많은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것 같고,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살면서 보니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면 바위나 돌과 같은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들도 눈으로 확인되지 않아서 그렇지 날마다 조금씩 변화합니다.

변치 않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을 쉽게 맹세하는 이들이 없지 않은데, 그것 또한 변합니다.

그것이 변질이 아니라 성숙이면 바람직할 터인데, 때로 변질되기도 하니 그것마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변화 앞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죽는 것은 있지만 죽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된 건 살면서 얻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습니다.

낙엽이 떨어진 자리, 또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 그리하여 떨어진 낙엽이 그대로 있지 않고 썩는 것은 다시 또 다른 생명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나무가 썩는 것 또한 죽어서 썩는다는 것이 일반화된 표현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또 다른 형태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 변화라는 마법. 우리가 바로 그 마법의 한 가운데를 건너가고 있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삶은 그대로 또 신비일 수밖에 없음이 확인됩니다.

진리라는 것, 또는 신적인 존재까지도 사실은 변화를 겪을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의 영역을 넘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야말로 존재의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속성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변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고, 내일은 또 내일의 내가 살아갈 터인데, 어제 살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은 것 같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다른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우리는 그렇게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고, 그런 일련의 변화들을 일러 ‘삶’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때로 변화가 두려운 것으로 인식될 때도 없지 않습니다.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때 변화는 두려운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삶의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변화에 대해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변화들 가운데 두려운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물리적·화학적 변화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어떤 이윤을 얻기 위해 일으키는 변화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 자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우리의 인식을 흐트러뜨리는 상업적인 수많은 변화들은 사실 엄청나게 두려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목민들은 변화를 수용하는 일에 상당히 탄력적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정착민들은 변화에 적응이 비교적 떨어지는데, 그것은 그들의 정서가 그렇게 형성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질이 유목민적이거나 아니면 정착민적이거나 상관없이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변화라는 사실 앞에서 정직해질 때, 우리의 삶은 그만큼 유연하고 탄력적일 수 있음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의 움직임을 따라 세상이 변화를 거듭하고, 우리의 삶도 그 변화하는 세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변화하는 생명체라는 사실, 나고 자라고 꽃피우고 살다가 죽어 또 다른 무엇인가로 살아가게 될 생명의 순환, 변화는 순환이라는 현상의 다른 이름이라는 깨우침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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