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6년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12.1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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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일요일 아침, 집사람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지난 2008년부터 4년 동안 몇 차례 제작시도를 했으나 매번 무산됐던 만화가 강풀의 웹툰‘26년’이었다.

첫 시작 초반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된 학살 장면은 의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피해자들이 안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이 깊이 있게 다가왔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국민의 힘으로 제작된 탓인지 영화‘26년’에 대한 관람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짓고있던 평화롭던 한 가정에 단발의 총소리와 함께 아기를 업은 엄마가 쓰러지며 남편의 절규가 이어지고 잔인한 학살의 현장에서 어린 꼬마들은 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고 누나를 잃으며 주인공들 각각의 사연들이 전개된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11일간 누적 관객 181만 5,882명을 기록, 200만 고지를 점령했다고 한다. 영화‘26년’이 이처럼 문화계 핫이슈로 자리한 건 아마도 반성 없는 가해자와 그를 보호하는 국가권력, 누구라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현실이 아마도 빛을 보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단죄됐어야 할 사람이 세상을 활보하고 그릇된 역사가 심판을 받아야하나‘80년 광주의 진실’이 왜곡되고, 애써 무시돼 가고 있는 현실에서 20~30대 젊은 관객들은 잊혀져가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영화‘화려한 휴가’에 이어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전 재산 29만원, 전직대통령은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잘 살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은 들썩들썩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쳤다. 긴 슬픔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느낌이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권력의 잘못에 대한 단죄가 없는 나라인 듯싶다. 용서와 화해가 미덕이고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역사에 맡긴다가 해법이다. 분명 진실은 있는데 진실을 감추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80년 그날 나는 8살 꼬마였다. 동네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전쟁 났다는 어른들의 말에 분주히 동네를 뛰어 다니던 생각이 난다. 그 후 책에서나 배우고,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실들이지만 그때 그 아픔을 100% 고스란히 공감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생각하고 알아두어야 할 현 시대에 대한 표현이고 올바른 길을 위한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금의 현실은 5·18 민주화운동은 잔악한 군부정권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5·18민주화운동 이전의 지식인 중심 민주운동에서 일반 민중 중심의 민주운동으로 변화하게 하여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분명 알려줘야 한다. 

영화가 끝난 후 후련한 감정보다는 미완성된 숙제를 떠맡은 기분이 들어 가슴이 먹먹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아버지를 잃은 진배와 어머니를 잃은 미진, 누나를 잃은 정혁은 모두 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피해자들이다. 세월이 흘러 각각 건달과 국가대표 사격선수, 경찰로 살아가지만 80년5월의 상처는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깊이 남아있다.

미진이 홀로 감행했던 작전이 실패로 끝나는 부분이 아쉽지만, 단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영화에 몰두하게 만든다.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꼭 한번 관람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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