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스 신드롬
제노비스 신드롬
  •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 승인 2012.12.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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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학 박사·충북도교육청 장학사>

12월 4일 뉴욕 지하철에서 한인 동포 한기석씨(58)가 부랑자에게 떠밀려 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가 플랫폼으로 기어오르려고 안간힘 쓰다 목숨을 잃기까지 50초 남짓 동안 근처에 있던 사진기자는 49차례나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플랫폼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도 살기 위해 발부둥치는 그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그는 그저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스톱, 스톱”하고 외치며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1964년, 27살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가 뉴욕시의 자기 집 근처에서 새벽 3시경 괴한의 칼에 찔렸다. 그녀의 비명에 이웃 사람들이 전등을 켜자 괴한은 달아났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은 곧 전등을 꺼버렸다. 그러자 괴한은 다시 돌아와 제노비스에게 칼질을 했다. 30여 분 동안 제노비스와 괴한과의 사투가 있었다. 38명의 이웃이 불 꺼진 창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주려고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다른 목격자가 신고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서 행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 또는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당시 이 사건은 수십 명의 사람이 공개적인 곳에서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조차 하지 않았기에 미국시민의 몰인정함에 비판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곧 두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라 일정한 심리적 법칙의 소산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심리학자 달리와 라데인은 각각의 분리된 방에 헤드폰을 이용해 대화를 하게 하는 실험을 하였다. 피험자를 2명씩, 4명씩, 7명씩 짝을 지어 대화를 하게 하였다. 대화 도중에 집단내의 1명이 “머리가 아파요, 쓰러질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는 조용해졌다. 이때, 2명씩 1대1로 대화하는 그룹은 95%가 즉시 나와서 사고가 났음을 알렸다. 4명씩 대화하는 경우는 62%, 7명씩 대화하는 경우 31%만이 사고가 났음을 보고했다. 보고를 안했던 피험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알려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잘 몰랐지만, 남들이 알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명목으로 대기실에 기다리게 했다. 여러 개의 방에 1명, 2명, 7명 등으로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대기실마다 문틈으로 연기와 비슷한 수증기를 조금씩 새어 들어가게 했다. 대기자들은 불이 난 것인지, 난방 스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기실에 혼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75%는 2분 이내에, 그리고 여러 명씩 한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6분 이내에 13%가 연기가 새고 있다는 것을 신고하였다. 사람 수가 더 많을수록 시간도 늦었고 신고 비율도 떨어졌다.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안하긴 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기에 저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판단하여 행동하는 현상을 ‘대중적 무관심’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한다.

뉴욕 시민의 비정함과 인간의 방관자적 성향으로 인해 한기석씨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의 심리학적 성향 논하기 이전에 고(故) 한기석씨의 딸 애슐리(20)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한순간 누군가 아버지를 도와줬다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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