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
유자차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12.1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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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향기 좋은 유자차와 마주 앉는다. 오랜만에 만난 A언니와의 만남은 유자차만큼 향기로워 좋다.

요즘 유행하는 미니카페에 들르면 A언니는 꼭 유자차를 주문한다.

향기도 좋고 마시고 나면 뒷맛이 개운하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했다. 맞다. 그래서 겨울에는 유자차가 으뜸이다.

유자~~ 내 유년의 기억의 바다에 언제나 선명하게 자리 잡은 과일이다.

유자에 대한 추억은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향에서 유자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래서 시제를 지낼 때는 꼭 올리는 과일 중 하나이다. 시제를 모시고 거나하게 취하여 돌아오신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나온 유자 한 개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었다.

유자는 썩 맛있는 과일은 아니다. 귤처럼 달지도 않고 사과처럼 은근히 끌리는 신맛도 아니다. 과일의 대부분을 차지한 유자알맹이는 시어서 어지간히 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먹지를 못한다. 그래서 유자 껍질만을 벗겨 먹었다.

지금은 알맹이와 껍질을 함께 설탕에 재어 그 청이 유자차가 되지만 내 기억으로는 주로 말려서 배가 아플 때 면 할머니가 다려서 그 물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다만 향이 기가 막히고 최고로 귀한 과일로 여겼으니 한 알이 손에 들어오면 자랑거리였다.

한 마을에 많아야 한 두 그루밖에 없었고 그래서 시제가 있는 10월이 되면 유자나무가 있는 집에서 줄서서 사오고는 했다.

또 떡을 할 때도 유자 잎을 콩가루와 같이 빻아다가 고물로 쓰면 인절미에서 나온 유자향은 또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세월이 지나 고향에 내려가 대규모로 재배한 유자밭을 보면 참 묘한 기분이었다.

비타민의 보고로 유자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늘었고 한때는 유자를 재배해서 돈을 좀 벌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싼 수입산에 밀려 차츰 방치한 유자밭이 늘어나고 있다. 재작년 고향에 갔다가 그 귀한 유자가 나무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아까워 차를 세우고 잔뜩 땄다. 그리곤 할머니가 했던 방식대로 유자에 구멍을 송송 뚫고 항아리에 담아 설탕물을 끓어 부어 겨우내 그 향에 취해 지냈다.

할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 “탱자는 고와도 상놈 손에서 놀고, 유자는 얽어도 양반 손에서 논다”고 하셨다.

그 말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는 안다. 겉모양이 매끄럽고 예쁜 탱자는 쓸데가 별로 없을뿐더러 향도 없지만, 곰보 유자는 쓰임도 다양하고 그 향이 일품이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우리네 세상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향기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면 오래오래 여운이 남는다.

언젠가 아는 분이 나이에 대해 이야기 하다 “넌 아직 아니야 통통 튀어서 좋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직 풋과일이라는 뜻일게다. 유자 같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일은 멀고도 멀었나보다.

A언니는 유자향에 취해 행복한 표정이다. 창가를 쳐다보니 아직도 눈이 내린다.

조만간 고향에를 다녀와야겠다. 우리 동네가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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