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치유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2.12.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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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눈 내린 아침 음반을 꺼내본다. 턴테이블을 열고 엘피판을 살짝 올려놓으니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흐른다. 달콤하다. 오래된 엘피판은 가끔씩 잡음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는 개운치 않다. 어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 하루를 무력하게 누워 보냈다. 만사가 귀찮고 나른한 아침, 그래도 먼지를 떨어 음반을 걸고 나니 생동감이 느껴진다. 가을에 만들어둔 국화차를 꺼내어 뜨거운 물을 붓는다. 천천히 노란 꽃이 동동 떠오르며 향긋한 내음이 피어오른다. 몸은 여전히 무겁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다. 눈 쌓인 도시 풍경으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상쾌하고 아름답다. 나만의 치유 방법이다.

몸이 무거울 때나 삶에 부대낄 때 이따금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올레길 걷기나 저렴한 비용에 다녀올 수 있는 해외여행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요즘은 해외여행도 일상이 되어 쉽게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자가 많다는 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까닭도 있겠지만 마음 다스리는데 도움 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다보니 마음 헛헛해지고 고독해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힐링사업 아닐까 싶다.

모 방송에서 시작된 힐링은 먹거리로부터 주거환경, 템플스테이, 이벤트까지 열풍이 되었다. 그만큼 건강한 삶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씁쓸해지는 걸 숨길 수 없다. 사실 힐링 문화를 체험하는 데 고급화될수록 상당한 비용을 지출한다.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며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경제적 지출 없이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관심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어두운 곳은 더욱 어둡고 깊어져서 보이지 않는다. 정작 치유가 필요한 소외계층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외로움과 고독까지 겹쳐 고통스럽다.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소액 기부금도 줄어 난방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미안하고 부끄럽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웃음은 맑고 화사하다. 나눔의 보람이 서로를 치유하기에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능력차이도 있지만 사회의 빈곤은 구조적 모순과 함께 우리나라 복지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만의 치유가 아닌 다 함께 할 수 있는 치유 방법을 찾아보는 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볼 때가 아닐까.

어느새 <겨울 나그네>는 멈추고 지붕 위 눈들은 녹고 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걱정스럽다.

나눔으로 서로에게 힐링이 되는 그런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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