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던 날
눈 내리던 날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12.0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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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올겨울은 12월 초순부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창밖은 연이어 내린 함박눈으로 온통 하얀 세계가 되었다. 기온까지 내려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마음 한곳엔 겨울 낭만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부르던 ‘고드름’ 노래, 가사 속에 있던 고드름도 건물 가장자리에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다.

아기들에겐 신기할 뿐이다. 눈 장난을 하던 손에 고드름이 쥐어져 있고 흰 눈과 어우러져 강아지처럼 즐거워한다.

눈이 내리니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기천사들이다. 왜 그럴까? 때 묻지 않은 동심이 흰 눈처럼 맑기 때문인가!

이젠 그 아름답던 눈도 겁이 난다. 미끄러운 출근길이 두렵고 추워지는 날씨가 반갑지 않다. 그러나 어린 시절 흰 눈은 아련한 추억들을 마음 한곳에 묻어 놓았다.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밤이었다. 고향집 뒤 교회언덕에는 경사진 비탈길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교회 언덕 주변으로 모였다. 비탈에 미끄럼 길을 만들기 위해서다.

당시는 텔레비전도 없이 자연과 더불어 놀이를 하지 않으면 특별히 즐길 놀이가 없었다. 옆에 있는 눈을 두 손으로 움켜 비탈길에 붓고 발로 여러 번 밟아 다진 다음 쪼그리고 앉으면 스르르 아래로 내려갔다. 스릴이 있어 나이 든 사람들이면 어린 시절 즐기던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조금 나아진 것이 비료 포대를 깔고 타는 것이다.

언덕 위로 올라가 경사면에 깔고 앉으면 언덕 아래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간다. 스키 대신 타는 비닐 미끄럼이다. 하늘의 달빛은 차갑고 손은 시리지만, 동심 속엔 미끄럼 타는 재미로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튿날 어른들은 교회 올 때 미끄럽다고 삽으로 흙을 파서 우리가 애써 만든 얼음길에 흙을 뿌리곤 하셨다. 우린 아랑곳없이 집에서 빗자루를 가져다가 흙을 쓸고 또 비닐 미끄럼을 탔다.

오늘처럼 하얀 눈이 많이 내리면 아버지는 볏짚으로 참새를 잡기 위해 새덫을 만드셨다.

참새들이 눈이 내리면 들에 먹을 것이 없어 집 근처로 많이 날아들었다.

먹잇감으로 벼나 조 이삭 같은 것을 사용하였다. 그 덫을 놓으시고 찢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참새의 동정을 살피신다.

문틈으로 보는 마당의 광경은 어린 내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참새가 날아와 벼 이삭을 쪼아 먹다가 덫에 걸리면 얼른 나가 참새를 잡아오셨다. 작은 참새를 만져 보라고 하여 손에 쥐면 부드러운 깃털에 쌓인 몸이 따스했다. 덫에 걸려 목이 늘어진 모습이 가련해 보이기도 했다.

잡은 참새의 털을 벗겨 약한 불에 구워서 익으면 소금을 뿌려 주셨다.

참새고기는 워낙 작아 살은 별로 없어 먹을 것이 적지만 아버지가 구워 주시던 참새고기는 쫄깃한 것이 참 맛이 좋았다. 고기를 드시지 않는 아버지도 참새고기는 잡수셨다. 아궁이 잿불에 구운 참새고기를 먹으려고 앉아 기다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탐스럽게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니 까마득히 잊었던 옛 모습들이 커다란 함박눈 송이에 담겨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딸을 아끼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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