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덮고 땅을 베다
하늘을 덮고 땅을 베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12.0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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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늘 함께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름이다.

철이 없을 때는 철이 없는 대로, 나이가 들어서는 나이가 든 대로, 사람은 그때그때의 시름이 있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시름이 없는 것을 시름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시름을 달래고자 노력하는 것이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시름을 달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탕(唐)의 시인 리바이(李 白)는 술을 통음(痛 飮)하면서, 마음 통하는 벗들과 청담(淸談)을 나누는 것으로 시름을 달래고자 했다.


‘벗을 만나고 묵다’라는 제목만으로 시의 내용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지만, 벗을 만나 며칠을 묵으면서 한 일은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 자체로는 흔한 일일 수도 있지만, 천고의 시름을 씻어버리고자 한 것이 목적이었음은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천고의 시름이란,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에게 숙명적으로 부여된 사라지지 않는 시름이다. 숙명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름을 마음에서 씻어 없애기 위해 시인은 술 마시기에 나선다. 몇 날을 지새워서 백 병의 술을 마시는 시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술주정뱅이지만, 이는 실제로 있는 모습이 아닌, 일종의 의식이다. 술이 비록 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忘憂物)이라 해도, 여간한 술로는 천 년이나 묵은 시름을 없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留連) 백 병이라는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는(百壺飮) 것이다. 보통은 시름을 잊는다고(忘) 하면 될 것을 씻어 쓸어낸다고(滌蕩) 한 것은 관념적인 시름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다. 의복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씻어서 쓸어내듯이 가슴에 달라붙은 때라고 할 수 있는 시름을 씻어서 쓸어내는 동작에서 시름의 모습이 선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시름을 없애는 의식은 술 마시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밤새워 벗과 청담(淸談)을 나눠야 하고 잠자리에 들지 않고, 밝은 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청담(淸談)은, 중국 위진(魏晉)시대 지식인 사이에서 유행한 철학적 담론(談論)으로, 혼탁한 세속의 명리(名利)를 떠난, 맑고 깨끗한 담화(談話)라는 뜻이다. 양소(良宵)는 좋은 밤이란 뜻으로, 시인이 좋다고 한 이유는 술이 있고 벗이 있기 때문이다. 벗과 술을 나누는 좋은 밤에 세속의 혼탁하고 번잡한 명리(名利)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세속을 벗어난 깨끗하고 맑은 정신과 이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울린다. 이러한 청담(淸談)은 시인에게서 천고의 시름을 씻어내 주는 역할을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시름을 씻어내기 위해 시인이 행하는 마지막 의식은 달 구경이다. 달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시름을 씻어내기 위해서 달 구경을 하는 것이다. 백 병 술을 마시고, 벗과 청담(淸談)을 논하고, 한밤에 잠자리에 들지 않고 달구경을 함으로써 천고의 시름을 씻어낸 시인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취한 채 빈 산에 누워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 시인의 모습은 이미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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