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산행
미친 산행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12.0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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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오늘도 예정된 일과표에 따라 8시에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제2 의림지로 가 그곳 못뚝에 주차시키고 용두산 산행을 시작했다. 용두산은 해발 874m로 정상까지는 약 1.3Km 되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행코스는 세 갈래가 있는데 어느 곳을 택하더라도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

나는 매주 1회 이 산을 오른다. 꾸준히 등산을 해온 전문산악인도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숨이 차 헉헉거리게 된다.

등산은 시작하여 처음 10여 분은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 30여 분을 경과하게 되면 몸이 유연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전신이 마취된 듯 자신도 모르게 두 발이 자유롭게 오가며 하늘을 나는 듯한 Running high 상태가 되어 기분이 좋아져 힘든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이른 아침 산중이라 처음엔 스틱을 잡은 손이 시렸지만, 어느새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1주일 동안 몸속에 쌓였던 삶의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시원하고 한결 가벼웠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저쪽 편에 먼저 도착하여 운동을 하고 있는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누구지 궁금해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먼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동창 P였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하며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친구는 사업실패로 전전긍긍하다 새로운 사업의 시작에 앞서 자신의 극기력을 키우기 위해 용두산에 올랐다고 하였다.

내용인즉 오늘 용두산을 세 바퀴 돌 계획이라고 하였다.

같은 코스를 세 번 반복해 걷는다는 것 지겨워 웬만한 의지로는 힘들다. 백수로 특별한 일 없으면 동행해 줄 것을 나에게 제의했다. 그래 옛날 촉 나라의 유비는 어진 인재를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였는데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위해 산 세 바퀴도 함께 돌지 못한다면 친구도 아니지!

즉석에서 승낙하고 친구가 마련한 충분한 일용할 양식을 나눠서 지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막상 산을 한 바퀴 돌아 처음 출발하였던 곳에서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려니 까마득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소중한 것이 신뢰와 약속이기에 그 약속을 지키려 걷고 또 걸었다.

이제 마지막 한 바퀴를 돌기 위해 출발지점에 섰다. 해발 8000m 미터의 히말라야 같은 느낌의 고산준령에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산행이 아니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타의 언덕을 오르는 고행 같았다. 처음 한 바퀴는 건강관리를 위한 설렘으로 두 번째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신념으로 세 번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극기력으로 산을 돌았다. 아침 8시30분에 시작된 산행이 오후 2시에 끝났다.

등산을 좋아는 하지만 이토록 지겹고 힘든 미친 산행은 내 인생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산행이었다. 못뚝에서 친구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P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듯하였다. 하지만, 어떤 난관이 부딪치더라도 이런 오기와 집념으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다면 꼭 재기할 것이라 믿으며 친구가 떠난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차를 몰아 집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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