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뜰에서
가을 뜰에서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10.1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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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우리 집 작은 뜰에 가을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노란 미역취, 보라색 �:�, 한라돌쩌귀, 그리고 분홍색과 흰색의 구절초, 진향 향을 가진 보랏빛 꽃향유, 샛노란 섬감국, 코발트빛 잔대를 바라보며 꽃빛깔처럼 고운 가을 향기에 젖는다.

작은 뜰에서 맞이하는 가을은 별로 볼품은 없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그곳에는 계절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서 있게 오가고 자연의 섭리가 보이진 않아도 조화롭게 진행된다.

그 소박한 모습에서 일상에 지친 마음이 옹달샘처럼 맑아진다. 그리고 진한 가을향기는 벌과 나비, 사람을 불러 모은다. 가끔 잠자리도 날아온다.

들꽃들은 봄부터 자라 작은 싹을 틔우고 계절에 맞게 꽃을 피워 벌에게 꿀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은 아름다움을 동반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연을 벗 삼아 많은 사색과 관찰을 통해 삶을 이루어 간다.

한 두 포기 구해 심은 꽃들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포기를 늘리고 가을 뜰 안을 화사하게 연출한다.

가을하늘보다 더 파랗게 핀 잔대. 가을꽃들의 청초한 모습은 화장하지 않은 맑은 소녀의 얼굴같다. 그럴 때마다 지난 시절이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처럼 스쳐간다.

담쟁이의 작은 잎도 어느새 고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계절만큼이나 화려한 색이다.

초록으로 여름내 흙벽돌 벽에서 강인함을 보이더니 찬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빛깔로 겨울을 준비한다. 그 고운 옷에 빠져 한참을 들여다보니 잎 속에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환한 웃음을 지으신 말없는 어머니, 불러도 대답 없는 그리운 어머니, 몇 번을 생각하며 바라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더 정답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포근한 얼굴이다.

분주한 일상에 가을 산을 찾진 못해도 우리 집 작은 뜰에서 맞이하는 가을이 있어 나는 감사한다.

고대광실(高臺廣室)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집이다. 나에게 알맞게 지어진 집, 그 뜰에서 작은 꿈을 심고 기르며 그곳에서 얻는 작은 기쁨은 마음 한 곳을 여유롭게 채워준다.

'사람은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여학교 때 열을 올리며 말씀하시던 사회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시간이 돌아오면 열심히 귀를 기울였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멋있었던 분이다.

삭막해지는 현대의 메마른 정서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피곤하게 해준다.

그런 삭막하고 메마름을 다소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우리 집의 작은 뜰이다. 들꽃 포기마다 내 손길이 함께 깃들여 있어 더욱 더 소중하다. 땅은 정직해서 들꽃에 정성을 쏟은 만큼 내게 보답해 준다.

하루에 지친 마음들을 가을 뜰에서 곱게 핀 들꽃들을 바라보며 말없이 전해지는 향기 속에 푹 잠긴다. 그리고 가을 향기로 마음을 맑게 씻는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님의 시를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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