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뿍듬뿍' 인심 정겹고… '왁자지껄' 흥정 흥겹고…
'듬뿍듬뿍' 인심 정겹고… '왁자지껄' 흥정 흥겹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2.09.27 2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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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5일장 진천장을 통해 본 명절
사람들 사이로 장사꾼들의 물건 파는 소리가 요란하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때문일까, 물건을 살것도 아닌데 장사꾼의 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간다. 목소리 큰 게 장땡이라더니 '싸다'는 장사꾼의 말에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간다. '된다 안된다' 흥정이 이어지고, '담았다 꺼냈다' 덤 실갱이가 벌어지지만,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얼굴 가득 웃음이 묻어난다.

지난 25일 추석대목장이 선 진천장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전국에서 네번째로 큰 전통시장답게 각지에서 모여든 장사꾼과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장사꾼의 걸쭉한 호객소리와 장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뻥튀기 아저씨의 '뻥'하는 굉음소리가 시골장터의 흥을 돋군다.

'없는게 없다'는 진천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을걷이로 수확한 마늘과 고추, 고구마 등이 줄줄이 딸려나와 좌판에 올려져 있고, 장날만 볼수 있는 지게와 광주리, 소쿠리, 체, 빗자루도 장터에 모습을 드러내 추억을 선물한다.

복닥대는 장터와는 달리 방앗간 앞에서 기약없이 앉아계신 할머니는 느긋하다. "챙기름이나 짜서 추석때 자식들 손에 한병씩 들려보내려구. 대목장이라 바쁜디 지달려야지~"하며 여간 느긋한게 아니다.

시골장터 시계는 더디게 초침을 넘기는데 몸빼바지 가게 옆 대장간에선 숙련된 대장장이 아저씨의 칼가는 소리가 날렵하게 들려온다.

시장에서도 대목인 집은 역시 생선가게와 정육점이다. 차례상에 빠뜨리지 않고 올라가는 품목이다 보니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적어놓은 생선값에도 재차 가격을 묻는 손님과 요리조리 신선도를 체크하는 손님, 깍아달라 떼쓰는 손님까지 생선집아저씨, 손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생선가게가 제 아무리 바빠도 정작 추석대목장으로 불난 집은 전집이다. 녹두전, 고추전, 동태전이 노릇노릇 장보기에 나선 사람들의 구미를 당긴다.

"대목장날이라 새벽 4시에 시장에 나왔다"는 전집 아주머니. 재빠른 손놀림으로 두 세개의 전을 동시에 구워내며 한껏 요리솜씨를 자랑한다. 허기를 채우던 손님들마저 전 맛에 반해 차례상 음식으로 구입하기도 한단다.

◇ 소박한 정이 물씬! 할머니장터

말 한마디 잘하면 값도 깎아주고 덤도 얹어주는 시골장터에서 난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넉넉한 인심과 구수한 덕담이 딸려오는 할머니의 좌판에는 파 한단, 풋고추 한 바구니, 호박 두덩이가 소박한 밥상처럼 차려져 정스럽다.

"새벽에 일어나 텃밭의 채소를 뜯어 가지고 장에 나왔다"는 할머니는 "요즘은 대목이라도 장사가 잘 안댜. 다덜 큰 마트로 가서 장을 보쟈녀. 시장 물건이 훨씬 좋은디 말여"하며 손님이 줄어든 걸 아쉬워했다.

이월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는 타래정과를 만들어 좌판을 폈다. "손주들에게 명절 용돈이라도 줄 요량으로 대목장이 설때만 정과를 만들어 시장에 온다"는 할머니는 "맛 좋기로 소문난 덕에 짐을 풀자마자 반을 팔고 두 바구니 남았다"며 쑥스럽게 웃으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날 풍경은 여전하다. 순대국밥집에는 뜨끈한 국밥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놓고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도 보이고, 올망졸망 보따리를 손에 든 채 이웃동네 사람들과 이야기꽃 피우느라 집걱정도 뒷전인 할머니도 눈에 띈다. 대목장을 핑계로 작정하고 나선 길이니 하루쯤 느긋하게 읍내 장터 눈요기라도 할 심산이다.

후루룩 국수 한그릇 뚝딱 비우고 장사에 나선 장꾼. 장터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에 맞춰 "싸요, 싸! 천원, 천원!"를 외치는 무 장수 아저씨. 갓 태어난 강아지들을 두고 흥정을 하는 상인과 손님. 모두가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전국 유명장을 돌며 도너츠를 판다는 이씨는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북적북적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시장이 좋다"면서 "특히 진천장은 농산물이 풍부하고, 개나 고양이, 닭 등 집에서 기른 가축을 사고 파는 곳으로 옛 전통장날 분위기가 살아있어 좋다"고 흡족해 했다.

질박한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넉넉함을 나누는 장터. 육자배기와 어깨춤으로도 우리가 되는 정겨운 시장사람들. 고소한 참기름 냄새, 비릿한 생선 냄새, 향긋한 과일 냄새, 사람사는 냄새까지 절묘하게 버무려지는 시골장터의 진풍경은 추석과 함께 아릿한 추억을 덤으로 선물해 준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풀이 죽어 있을 수는 없다.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즐거움을 노래해야 한다.

추석대목 진천5일장에서 '즐거운인생-즐거운 추석'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곳에 모두 녹아 있었다.

◇ 조선시대부터 명맥 이어오는 '진천장'

조선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오던 진천장은 진천읍내 백곡천을 사이에 두고 큰 장이 선다. 매월 5, 10, 15, 20, 25, 30일에 장이 서는 진천 5일장은 전국에서 네번째로 큰 전통시장이다.

시장은 전통시장과 야시장이 약 5km 거리에 500여 점포가 형성되어 있다. 농업이 발달해 쌀과 야채 등의 농산물이 시장의 주 품목이다.

또한 다른 시장에서 보기 힘든 옛날 물건들과 집에서 몇마리씩 기르는 가축, 2500원짜리 장터국밥, 즉석두부 등이 옛 시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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