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달
황진이의 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9.24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음력 8월은 추삼월(秋三月) 중 두 번째 달이라 해서 중추(仲秋)라 불리는데, 중추(仲秋)하면 떠오르는 것이 중추절(仲秋節)이요, 중추절하면 떠오르는 것이 달이다. 달 중에도 보름달이다. 달을 보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고향 생각이지만, 이 못지않은 것이 님 그리움이다. 두 경우 모두 바탕에는 그리움의 정이 깔려있다. 떠나온 고향에도 떠 있을 달, 헤어진 님도 바라볼 달이기에 달을 매개로 헤어짐과 떨어짐의 상처는 치유된다. 굳이 보름달만 고집할 일은 아니다. 초승달도, 반달도 모두 나름의 형상으로 그리움의 정을 돋운다. 자신을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일컬을 정도로, 시재(詩才)를 뽐냈던 황진이는 중추(仲秋)의 반달을 보고 과연 어떤 시상(詩想)을 떠올렸을지 자못 궁금하다.

◈ 반달을 읊다(詠半月)

誰착崑山玉(수착곤산옥) : 뉘라서 곤륜산의 옥을 찍어내어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 : 마름질하여 직녀의 머리빗으로 만들었는가?

牽牛離別後(견우이별후) : 견우가 떠나간 뒤

愁擲碧空虛(수척벽공허) : 시름겨워 푸른 공중 빈곳에 던져버렸다오



웬만한 상상력으로는 시의 어디에서도 달을 찾을 수 없다. 대신 여인네들이 애지중지하던 얼레빗만 보인다. 그것도 명품 옥(玉)으로 알려진 곤륜산(崑崙山) 옥으로 만든 빗이다. 이 빗이 의미가 있는 것은 명품 옥으로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주는 의미로 인해 이 빗은 단순히 머리를 빗는 용도로 쓰이는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빗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묻고 있지만, 그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너무나 결정적인 힌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빗의 사용자가 직녀(織女)라면, 이것을 그녀에게 준 사람은 응당 견우(牽牛)일 것이고, 이들이 전설적인 연인 사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비극적 사랑의 남녀 주인공인 이들에 대한 전설상의 묘사에 등장하는 은하수, 오작교가 이 시에는 드러나 있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이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숙명을 지닌 비련의 주인공 이미지가 이 시에는 없다.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강렬한 남성상을 시인은 창출했다. 시에 등장하는 곤륜산(崑崙山)은 중국 서쪽 끝에 위치한 전설상의 산으로, 하늘에 닿을 만큼 높고, 불로장생(不老立?)의 신선인 서왕모(西王母)가 기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험하기도 하지만 영역 자체가 선계(仙界)이기 때문에 인간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런데 견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곳에 갔다. 왜냐하면 그곳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옥이 있고, 그 옥으로 만든 빗으로 직녀를 사로잡기 위함이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주는 것과 같은 상황 설정이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거는 로맨틱한 영웅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여인이 있을까 직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견우가 준 사랑의 징표인 곤륜산(崑崙山) 옥 빗을 고이 간직하며 기꺼이 그의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견우가 떠난 것이다. 견우직녀의 전설에서 직녀가 은하수를 건너 천계(天界)로 떠난 것과는 다른 설정인데, 이는 기생(妓生) 신분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뭇남성들의 떠나감을 감내해야 했던 시인의 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을 잃은 그녀는 깊은 수심(愁心) 끝에 결심을 끝낸다. 사랑의 징표에서 상처의 기억으로 돌변한 곤륜산(崑崙山) 옥으로 만든 빗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직녀가 푸른 허공으로 던진 빗이 바로 반달이 된 것이라는 시인의 발상은 기발하고 시원하다. 이제 견우직녀 사랑의 흔적은 은하수가 아니라 반달이다. 영웅적 사랑 고백과 쿨한 헤어짐, 과연 황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