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군인의 이야기
늙은 군인의 이야기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9.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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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부부동반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

친구 부인이 늦둥이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고 자랑을 하였다.

그러면서 아들의 군대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특등사수여서 포상휴가도 왔었고 대대측정에 1등을 하여 사단장 표창도 받고 oo훈련에 최우수 사병으로 선발되기도 하고.

군대에 가보지도 않은 여자가 어떻게 군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그토록 실감나게 설명해 주는지 사실 여부를 떠나 걸쭉한 입담에 놀랐다.

갑자기 좌중의 남자들이 너도나도 때아닌 30~40년전의 군 무용담을 털어 놓았다.

당시의 기록이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으나 들어보니 모두가 특등사수였고 마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더러는 강재구소령에 버금가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위기에 처한 전우를 구했다는 등 정말 대단한 역전의 용사 같았다.

군대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아득한 미로이다.

모두들 화려하고 멋진 '신나 군(軍)'의 추억담이었지만 나의 군생활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고 두번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고문관 노릇 제대로 하였었다.

1973년 8월초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계급없는 훈련병 때의 일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오후 우리 부대는 야간훈련을 나갔다.

훈련이 거의 종료될 무렵 나는 갑자기 설사를 동반한 심한 복통을 느껴 인근 풀섭으로 들어가 볼일을 봤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훈련병에게 훈련복을 반납하고 집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일을 마치고 뒤늦게 집결지로 뛰어 갔더니 모두 군장을 갖추었는데 나의 전투복은 온대간데 없었다.

교관으로부터 정신나간 올빼미라고 호된 질책과 부대원들의 조소속에 허둥댔지만 허사였다. 하는 수 없이 팬티와 메리야스만 입은채 어깨엔 M1소총을 메고 머리엔 철모를 쓰고 허리엔 탄띠와 수통을 차고 1시간 정도를 걸어 자대에 도착한 가슴아픈 추억이 있다. 그 때의 그 모습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방 자대에 배치된 일병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자체 사격훈련이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3명이 불합격하여 벌로서 자갈밭위에서 2시간동안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하여 전투복의 무릎, 팔꿈치, 엉덩이가 닳아 구멍이 난 적이 있었다. 아마 나 같은 군인이 실제 전투에 배치되었더라면 백전백패 당했을 것이다.

지금도 운동신경이 둔하지만 참 해도 해도 너무한 있으나 마나 한 군인이었다.

순하고 착한 병사로서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는 대체가능인력이었을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삼수 끝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내가 처음 차를 운전하여 다니는 것을 보고 동생들이 우리 형이 자동차운전을 하는 것은 세계 5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고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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