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간다
닭고기 간다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9.0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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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KBS 전국 노래자랑 시간이었다. 출연자의 시어머니가 종이상자에 장닭을 담아 가지고 나왔다. 아마 며느리 노래하는 것이 자랑스러워 그 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 온 것 같다.

사회자에게 선물하는 모습에 아직도 우리의 시골 정서는 나눔의 정이 남아있어 마음 한곳이 따뜻해 졌다. 문득 그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친정아버지는 겨울방학에 딸네 집에 다니러 오시는 길에 암탉 한 마리를 가져오셨다.

집에서 기르던 놈이라 벼슬도 빨갛고 걀걀 거리는 통통한 닭이었다. 털이 붉은 갈색을 띤 건강해 보이는 암탉이다. 닭은 공포에 질려 까만 눈을 껌벅거리고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하며 탈출구를 찾는듯 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물을 끓이더니 닭의 목을 쳐서 거꾸로 들어 피를 뽑으며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생명을 끊은 후에 끓인 물을 부어 털을 뽑았다. 이렇게 잡은 닭으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그 며칠 후에 친정엘 갔다. 마당에는 집에서 기르는 토종 닭 몇 마리가 꼬꼬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방안 창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네 살 된 막내는 신기한 눈으로 '닭고기 간다.'라고 손가락으로 닭을 가르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황소처럼 커다란 눈은 더 커진 것 같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찌 닭을 닭고기라고 말할까? 한참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번에 외할아버지가 가져온 닭을 집에서 잡아 요리를 해서 닭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어린 것의 눈에는 맛있었던 닭고기만 생각난 것이다.

아이의 생각으로는 그 말이 옳은 말이었다. 아마 산닭이 고기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은 모르고 오로지 맛이 있었던 닭고기만 생각나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유아들은 백지처럼 깨끗하고 순수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 가감하지 아니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기 때문에 가끔은 어른들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비록 어리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그들도 판단을 하고 있다. 다만 표현이 직설적이고 미숙할 뿐이다. 이처럼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생각하며 그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다.

아이들은 가장 가까운 부모나 위탁기관에서 함께 생활하는 교사가 행동의 모델이 된다. 때문에 서로의 인격적인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모방하여 학습되기 때문이다. 요즈음 많은 사건이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죄의식 없이 저지르며 사회를 혼란시킨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을 믿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는 순수한 동심에 멍이 들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고 내 자녀처럼 보호해야 하겠다. 다음세대의 기둥인 어린생명들을 위해 올바르게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닭고기 간다.' 라고 말하던 천진한 그 모습을 그리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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