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
  • 허세강 <수필가>
  • 승인 2012.09.0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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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허세강 <수필가>

공직에 종사하다 퇴직하신 분들을 부르는 칭호가 마땅치 않다.

대부분 퇴직 당시의 직책이나 직급으로 호칭하는데 좀 어색한 느낌이 없지도 않다.

어떤 분들은 그것을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 앞에 전(前) 과장님, 전(前) 부장님 등으로 부른다면 더더욱 우스울 것 같다. 비록 이제는 보잘 것 없는 백수에 지나지 않치만, 그래도 '허씨(氏)'라고 불려지는 것 보다는 훨씬 품격이 있다.

재직 시의 호칭으로 불려 질 때면 갓끈 풀린지 한참되었지만 소속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때 교육학을 공부할 때 매슬로의 인간욕구 5단계설 이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것을 그냥 외우기 바빴는데 돌이켜 보면 사람이 조직에 속하여 살아간다는 3단계의 소속의 욕구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것인가를 외톨이가 된 지금 새삼 깨닫게 된다.

하루종일 휴대폰 벨이 한 번 도 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 메시지 음(音)은 자주 울리는데 열어보면 대출안내, 마트의 행사안내 등으로 나를 더욱 허탈하게 한다.

오늘도 백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찰나 휴대폰의 벨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이틀만에 들어보는 Hero라는 노랫소리에 감격하여 홀더를 열고 발신번호를 확인하였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였다. '허 서기관, 나 ○○야. 요즈음 건강은 좋은가? 퇴직하여 무엇으로 소일하며 지내는가? 40년이상 일했으니 이젠 좀 쉬어야지….'

나 보다 몇 년전에 퇴임하셨지만 재취업을 하시어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배님의 전화였다. 나는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한 듯 너무 반가워 한참동안 주변 일상의 이것저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서기관! 특별히 하는 일 없으면 알바 한번 안해 보겠나? 자네의 능력과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1주일에 서너번 학생들 지도하는 일이네. 경제적으로 크게 도움은 되지 않치만 용돈 정도는 쓸 수 있을 꺼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오매불망 나도 이제 꿈에도 그리던 재취업을 하게 되는구나. 천하를 얻은 듯 기뻐 어찌 할 줄 몰랐다. 그러면서 학사자격증 즉 대학졸업증명서를 사무실로 갖고 오라고 하였다. 예! 그러겠노라 하였지만 갑자기 천당에서 지옥으로 곤두박질하고 말았다.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 2종보통이 전부이고 최종학력은 고졸이니 이 일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현직에 있을 때 직장교육을 하며 내가 자주 사용하던 말 중에 하나가 '이 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것이고 준비하는 자만이 인생을 성공 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들어 대며 말해 왔지만 막상 나는 나의 인생, 나의 노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노력하였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며 때늦은 참회속에 씁쓸히 하루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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