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폰 모닝콜
실로폰 모닝콜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8.12 2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입추가 지났다. 아직도 더위는 쉽게 가시지 않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가을이 오기 전에 먼저 아이들이 출타한 2층의 빈 방부터 정리했다. 책장 맨 아래 서랍에 작은 실로폰 한곳이 녹이 쓴 채 케이스에 두 채와 나란히 담겨있었다. 이미 다 자라 서른 살이 넘은 아이들 생각에 마음은 지난날을 더듬는다.

젊은 시절 음악 강의에 참석했던 나는 신선한 정보에 관심이 생겼다. 그것은 교수님이 아이들을 깨울 때 "야! 빨리 일어나" 라고 소리 지르지 말고 방문 앞에 가서 선율악기를 한번 들려주라고 하셨다. 동화 같은 상황을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니 한번 적용해 보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하루는 아침 여섯시쯤 2층 아이들이 자는 방문 앞에 가서 조금은 설레는 맘으로 실로폰을 들었다. '아침'이라는 동요인데 계이름을 알기 때문에 한손으로 채를 이용해 두드렸다.

'일어나자. 아침이다. 어서들 일어나서

(미미레도, 미미레도, 미파솔 솔파미파)

새아침 맑은 바람 우리 모두 마셔 보자'

(레미파 파미 레미 미미 파솔 미미 레도)

아침에 들리는 실로폰의 단순한 선율은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마음이 쏠린 듯 했다. 그러자 둘째아이부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선율이 들리는 곳으로 나왔다. '엄마가 실로폰으로 친 거야'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했다. 적용한 정보는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깜짝 이벤트로 어린 시절 아이들의 마음에 추억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그 동요에 맞추어 6시면 일어났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규칙적으로 하다 보니 여섯시에 일어나고 밤 아홉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 습관으로 중학교 입학해서는 숙제할 시간이 모자라 애를 태운 때도 있었다. 남자 삼형제를 키우는 나를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차분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남자아이들 셋을 키웠느냐는 말을 가끔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남자 아이라고 해서 다 억세거나 어수선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삼형제는 조용히 자랐다. 그때는 집에서 살림을 할 때라 때마다 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할머니가 체육공원에 데리고 가면 서로 재미있게 지내며 나름대로 정서적인 유년 시절을 보낸 셈이다.

따뜻한 봄날 친정에 갔을 때는 자기들이 신고 있던 고무신에 잡아온 올챙이를 길러 개구리가 되었을 때 논에 가서 살려준 일, 모든 것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로폰의 채를 들고 다시 그 동요를 쳐 본다. 여러 개 포개진 낡은 앨범 속에 아이들의 모습을 한장 한장 넘기며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귀여운 손주 온유와 소명이가 할머니 집에 오면 한 번 들려주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