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상사화
  •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 승인 2012.07.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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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청주 덕성유치원장>

여름 뜰은 유난히 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꽃들의 속삭임으로 가득하다. 플록스, 모싯대, 원추리, 참나리, 왜솜다리, 붉은 인동, 청강초롱, 분홍달맞이, 비비추, 모두 초록빛 여름 속에 저마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는 뜰인데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던 꽃이 초록빛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며칠 전 장마가 그친 오후 벽돌담 아래 연분홍 상사화가 처연히 피었다. 잎사귀도 하나 없이 줄기 꼭지에 꽃대를 올려 핀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그 모습에 많은 사연이 담긴듯해 관심이 간다.

상사화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탐스런 잎사귀를 올려 봄을 알린다. 모란꽃처럼 탐스런 잎은 여름이 오기전 모두 말라 싹이 났던 자리는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7월 중순이 넘어 장마가 지기 시작하면 기다란 줄기 끝에 분홍색 꽃을 피운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난날 보았던 그 빛깔,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처음 상사화를 본 것은 고향의 한학자셨던 집안의 할아버지 댁에서였다.

어느 여름날 넓은 마당이 있는 토담 밑의 한곳에 잎도 없이 분홍색 꽃이 몇 대 피었는데 미인처럼 곱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도 저런 꽃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끔 여름철 등산을 하다 하산할 때 절이 있는 곳에 피어있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내 마음에 늘 피어있던 그 꽃은 남편과 함께 등산 갔을 때 산중턱 허물어진 집터에서 발견했다. 선녀처럼 고운 모습 그대로 한포기를 모셔온 것이다.

이젠 긴 세월이 지나 포기가 많아졌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평생 서로 만날 수 없도록 자라는 것이 특징이며, 3월에 싹이 돋아 무성히 자라다 6월쯤 되어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7월초 잎이 없는 상태에서 꽃이 살며시 머리를 내밀고 아름다움을 뽐내다 8월 중순쯤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평생을 살지만 꽃과 잎이 만나기를 간절히 원해도 평생을 만날 수 없는 것이 상사화의 일생이다.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녔나보다.

깊은 산속 어느 암자에 한 스님이 죽을 각오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옆방에는 죽을병을 고치러 온 처녀가 묵게 되었다.

기도 덕분인지 죽을병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나 가부좌(跏趺坐)를 튼 스님은 옆방에 유숙하는 처녀 생각에 영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바랑을 짊어지고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스님이 절을 떠나 버리자 혼자 남은 처녀는 온통 스님 생각으로 죽을병이 다시 도졌다.

스님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암자로 돌아 왔으나 오는 동안 여러 날이 지나 이미 처녀는 목숨이 다해 버렸다. 처녀가 죽은 방문앞 뜨락에는 낯선 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처녀의 죽은 넋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이 전설이 바로 상사화다.

그런 전설을 가진 상사화가 볼수록 애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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