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되는 길
첫째가 되는 길
  • 이제현 <매괴여중·고 사목 신부>
  • 승인 2012.07.1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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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제현 <매괴여중·고 사목 신부>

학기말 고사를 본 학생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다시 평화가 깃듭니다. 만나는 학생들에게 시험 잘 보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떨어졌어요.", "못 봤어요." 하며 울상입니다. 꼭 1등이 되어야 잘 한 것처럼 느끼는 것은 시험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늘 첫째가 되고자 하는 욕심, 갈망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첫째가 되는 길에 관하여 세상에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한 때는 경제적 자산을 중요하게 여겨, 돈을 모아 부(富)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유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형의 자산보다 평소에 담금질한 무형의 자산, 창의력, 인성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누구나 겪는 아픔, 상처에 대한 치유, 소위 '힐링(Healing)'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1등, 첫째, 최고의 삶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참된 삶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시대나 민족, 인종, 지역 등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으뜸가는 삶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공감과 신뢰를 얻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며 살아간 수많은 성인들의 삶을 통해 첫째가 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성인 중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이기도 한 성인은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첫째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애와 업적이 다른 성인보다 특별히 길거나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세상과 다른 신앙의 기준이 드러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박해 시대에서 신앙을 일찍 받아들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1836년에 세례를 받고, 2명의 동료와 함께 사제가 되기로 준비하는 신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마카오, 만주를 가면서 가족과 집을 떠나서 생활하였습니다. 신학교로 가는 길도 험난했지만,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1845년에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어 이 땅의 교우들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에 체포되었고, 새남터에서 순교하면서 짧은 생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오랜 수고와 노력에 비해 김대건 신부님의 삶의 결실은 초라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은 순교하기까지 쌓아온 소위 스펙이나, 개인의 행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교우들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였고, 신앙을 위하여 비우고 떠나는 선택의 순간에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103위 성인 가운데 첫 번째로 그분을 기념하고 공경합니다.

그러므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부, 명예, 권력 등을 소유하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즉시 비우고 떠나면서 이웃에게로 먼저 달려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첫째가 되는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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