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7.1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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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뭘 쓸까 생각하다 차를 한 잔 먹기로 했다. 나는 오래된 차광(茶狂)이라서 차 없이는 살기 어려울 정도다. 어느 정도면 차를 좋아하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 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묻는다.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드세요? 여행을 갈 때 차를 챙겨 들고 갈 정도면 차를 마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다구(茶具)를 모두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찻잎을 조금 덜어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면 된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어디에도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고, 아무 컵에나 넣고 우려 마시면 된다. 문제는 차를 덜어 넣고 다닐 정도로 성의가 있느냐는 것이다.

내 여행 가방에는 물통이 꼽혀 있을 때도 있지만, 차통을 꼽고 다닐 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지 않고 중국산은 물이 세서, 대만산 내열성 플라스틱을 제품을 쓴다. 가벼운데다가 차를 거르는 망이 있어 편하다. 우려내서 동료들에게 한 잔 씩 돌리기도 한다.

자동차에는 보온용 차병이 있다. 운전하면서 마시는 용도다. 아침에 떠나면서 차를 훌훌 마시기 시작하면 정신이 깨어나 즐겁고, 밤에 졸릴 때 진하게 한 잔 먹으면 졸음이 달아나 좋다. 내 차에는 각종의 차가 있어 오전에 먹는 차, 야밤에 먹는 차를 골라 먹을 수 있다.

그것도 귀찮으면 아주 쓴 일엽차(一葉茶)가 있는데, 잎 하나만 넣어도 하루 종일 먹을 수 있다. 이쑤시개처럼 말아놓은 찻잎 몇 개를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며칠도 버틸 수 있다.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 쓴 맛에 질겁한다.

차꾼들은 이동렌지와 주전자를 비롯해서 아예 차호, 찻잔을 모두 챙겨 다니기도 한다. 산사나 오롯한 여행지에서 제대로 다려먹는 차 맛은 정말 좋다.

얼마 전 중국 공항의 면세점에서 자기로 된 차호(茶壺) 콤팩트 세트를 보고 살까말까 망설인 적이 있다. 조그마한 상자 안에 모두 들어가도록 되어있어 앙증맞았다.

그러나 칠칠맞은 성격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해 사지 않았다. 더 중요한 까닭은 그릇 색이 하얀색이 아니라서 그랬지만 말이다. 하얗지 않으면 색깔이 잘 드러나지 않아 진하게 물들인 찻잔은 영 맘에 내키지 않는다. ?好� 눈도 즐거워야 할 일이다.

이러는 나를 편집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도 다 그랬다. 기억나는가? '아해야, 차 끓여라.' 시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산에 올라도 차동(茶童)을 데리고 다니지 않았는가? 신선 옆에는 늘 차를 다리는 장면이 삽화처럼 들어가 있다. 동양화의 많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내가 편집을 버린 것은 성격 탓도 있지만 계기도 있었다. 어느 스님이 너무도 아끼는 차구를 제자가 깨트리는 바람에 차반으로 머리를 깠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든 것을 버린 사람도 자칫 차 때문에 물욕이 생길 수 있겠다고 깊게 느꼈기 때문이다. 내 방의 찻잔은 거의 이가 다 나갔다. 학생들이 씼어오다보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남학생은 칼손이라서 그러려니 한다.

나는 새 차를 혼자 아껴먹지 않고 나눠먹는다. 개봉 후 변질은 금세이기 때문이다. 버릴 차도 얻어 온다. 나름의 섞어먹는 법(blending)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술이 좋아 담배를 끊었고, 차가 좋아 커피를 끊었다. 그렇다면 술과 차 가운데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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