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이정표
  • 심억수 <시인>
  • 승인 2012.07.0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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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심억수 <시인>

지난 주말 직장 걷기동호회인 워크홀릭에서 실시한 백범명상길 걷기 행사에 참여하였다.

마곡사를 감싸고 있는 태화산 백범명상길을 따라 구불구불 걷다보니 새로운 인연과 마주친다. 눈에 들어오는 모두가 새롭다. 비단 오늘 뿐이겠는가? 어제 바라본 우암산의 풍경이 오늘과 다르고 아침마다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매일 다르다. 이렇듯 늘 새로운 변화와 함께하면서도 일상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잊고 지낸다.

대다수 직장모임은 부자연스럽거나 직장의 연속이라는 생각으로 경직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워크홀릭 동호회원들은 자신의 취미 활동이기에 직책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냄새 나는 모임이다.

직장에서 상하 간, 부서 간, 내·외부 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정보의 흐름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모임도 직장 상사와 함께하기에 마음가짐이 자칫 경직될 수 있겠지만 동호회 일원으로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을 공유하게 된다.

타 부서 직원들과 어울려 마음을 나누고 각 과나 부서에서 추진하고 있는 공동관심사에 관하여 정보를 교환하며 직장 내에서 미진했던 일들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는 등 길을 걸으면서 소통한다.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것이 소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소통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워크홀릭회원은 10여년을 함께 길을 걷다보니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어디가 불편한지 알 수 있는 마음이 되어간다.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같은 곳을 걷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세월을 걷고 있다.

길을 걷다보면 여러번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계획에 의하여 가고자하는 방향을 선택하면 아무 탈이 없건만 호기심에 다른 길로 접어들다 보면 낭패를 본다.

이번 백범명상길 걷기에서 힘들어 하는 회원을 위하여 길을 우회하였다. 백범선생이 은거하였던 백련암을 지나 마애불이 있는 오르막길로 가야했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길이 없어졌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일부회원이 우거진 숲을 헤치며 산 능선을 향해가면서 따라오라고 한다. 일행은 우거진 숲을 헤매며 산을 오르다보니 백련암 뒷길이다. 바로 올라오면 될 길을 생고생을 하며 어렵게 올라왔다. 눈길은 아니었지만 우거진 숲을 헤치며 힘겹게 올라오고 보니 백범선생이 좋아했다는 서산대사의 선시가 떠올라 읊어본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한 여름 푸른 바람이 코끝에 매달린다.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본다. 구름은 바람을 원망하지도 않고 하늘을 열었다 덮기를 반복한다. 아니 산천초목 어느 것 하나 바람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꾸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왔으면 순탄하게 왔을 길을 더 편하게 오르려다 우거진 숲속을 헤매며 시간을 허비하였다. 내 삶의 여정도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기 위하여 서두르지 않고 교만하지 않게 가고 있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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