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나물을 나르다
쓴 나물을 나르다
  • 김종례 <보은회남초 교감>
  • 승인 2012.07.0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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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종례 <보은회남초 교감>

얼마 전 내 인생에도 상견례 자리가 마련되었다. 봄이 여기저기에 꽃 궁전을 짓느라 분주할 즈음, 내게도 덩달아 물오르는 버들개지처럼 오랜만에 생기로움이 찾아왔다. 예비 사돈과의 정중한 식사를 위하여 상경 하던 날은 왜 그리도 마음이 둥실거렸는지.

6년 전 대학시절부터 서로를 견제하며 긴 세월을 잘 견뎌온 두 아이가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서 결혼 상대자로 마음을 굳히게 되자, 진도가 눈에 띄게 쑥쑥 나가면서 이것저것 걱정거리와 바쁜 일들이 쌓이는 요즘이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시골에 널려있는 쓴 나물들을 거두거나 사서 나르는 일이다. 애들이 잘 먹지도 않는 쓴 나물들을 왜 이리 많이 나르느냐고 남편이 핀잔을 해도, 못 들은 체 쓴 나물들을 여기저기서 거두어 열심히 나른다. 더덕, 두릅 ,씀바귀, 죽순, 머위, 오가피나물, 가죽나물, 고들빼기 등이 사실 우리에겐 쓰지도 않고 개운하게 먹을만한데도 딸은 그것들을 물러빠진 쓴 나물이라고 불렀다.

대학진학 후 십여 년을 떨어져 살면서 자유분방한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잔뜩 배인 터이다. 딸과 식사를 할 때마다 쓴 나물들만 앞에다 죽 놓아주며 이런저런 삶의 지혜들을 늘어놓으면,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드시는 야채들을 왜 이리 많이 주느냐고 불평들을 늘어놓곤 한다. 한번은 진한 야채스프 한 컵을 들이대었더니 잔뜩 찡그리며 코를 틀어막고 야단법석이다. 배를 쥐고 웃으면서 '저런 아이가 어찌 인생을 통째로 짊어지고 오는 한 남자와 파란만장한 인생살이를 시작하려는지…' 가지가지 잔걱정이 쌓이는 요즘이다.

딸이 태어나던 날은 함박눈이 무릎까지 쌓이던 새벽이었다. 내 집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아이에게 감사하고, 저에게도 예쁜 딸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고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는 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못되게 나무라고 호되게 꾸짖었던 일들만 새록새록 생각난다. 아침 한번 제대로 차려주지 못하고 언제나 먼저 집을 빠져나오곤 하여 수능시절 제 홀로 힘들게 씨름하던 딸이었기에, 한번도 알뜰살뜰 곰살궂게 챙겨주지 못한 어미였기에, 출가날짜를 잡은 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나열한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게 나는 딸을 매우 엄하게 키운 케이스다. 초등시절부터 물걸레로 방 닦기며 설거지며 집안 잔일들을 많이도 시켰으며, 대학시절 밑반찬을 가지고 상경하여 하룻밤 묵는 날에도 자질구레한 일상의 풍경으로 내내 잔소리만 퍼붓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대화의 부족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던 사춘기에도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를 앞에다 세워놓고 직사포를 쏘아대기 일쑤였다. 딸애가 간혹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계모가 아닐는지… 내가 현대판 콩쥐는 아닐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식구들을 한바탕 웃기기도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늘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저러다가 결혼식 날 끌어안고 펑펑 눈물 쏟으려고 그러는 거지.' 하며 나무라곤 하였다. 오히려 모질고도 엄한 나를 먼저 위로하며, 엄마 입맛에 맛있는 딸이 되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딸이 어느새 상견례를 치르다니. 그러나 여호와께서 내게 맡기신 자녀를 내 방식대로 인생 공식대로 키운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자녀들아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멀리하지 말라. 그리하면 필경 지혜롭게 되리라' 는 말씀을 의지하면서, 내가 한 교육방법이 최선책은 아닐지라도 아주 무모한 짓은 더구나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도 해 본다. 웨딩마치 울리는 순간까지 쓴 나물들을 열심히 나르면서 마지막 훈육으로 어미의 본분을 다하려 한다. 인생의 쓴맛을 예견시키려는 엄마의 심정을 저 딸이 스스로 터득할 즈음이면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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