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의 눈물
  • 이용길 <시인>
  • 승인 2012.06.2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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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 <시인>

한 방울의 눈물이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다. 호흡기를 떼어내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가족들이 소리내어 울자 아버지도 소리 없이 울었다.

말 없는 눈물은 작별의 아쉬움을 말했다.

하늘길을 가다 돌아서서 떨군 눈물은 병실을 적시고, 세상을 적셨다. 그러나 의료진은 눈물이 아니라고 했다. 눈에서 흘러나온 물이라고 했다.

눈물은 눈에서 솟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솟아나와 마음으로 흐른다.

백운 이규보는 '마음의 눈물'을 이렇게 노래했다. "눈물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랍니다. 저기 차가운 샘물같이 정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랍니다."

샘물은 개울을 따라 흐르지만 눈물은 정을 따라 흐른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은 그래서 소리가 없어도 울림이 크다. 아버지의 눈물도 마음에서 흘러나온 게 분명하다. 눈에서 흘러나왔지만 보는 이의 마음까지 젖으니 말이다.

눈물은 눈물을 부른다.

한 사람의 눈물은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이 아니다. 정이 통하면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눈물의 강이 흐른다.

영화 '워낭소리'는 소의 눈물이 사람의 눈물을 부르는 것을 보여준다. 끝 부분에서 할아버지가 "편히 가그래이"하며 늙은 소의 코뚜레를 풀어주었을 때 소는 굵은 눈물을 흘렸다. 소가 눈물을 흘리자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소는 소리 없이 울고 사람들은 소리내어 울었다. 작별의 순간에 소가 흘린 눈물은 단순히 눈에서 흘러내린 액체가 아니다.

눈물은 소리 없는 말이다.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말이다. 마음에서 흘러나온 눈물은 마음으로 들어야 들린다.

그러나 가슴 없는 이들은 눈물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눈물은 눈에서 흘러내린 액체일 뿐, 죽음은 유기체가 무기체로 바뀌는 것일 뿐, 그 슬픔이 말하는 것은 듣지 못한다. 왜 아버지에게서 호흡기를 떼어내도 호흡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가슴 없는 세상은 모른다. 아버지의 눈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물이 마른 이들은 모른다.

눈물은 눈물만이 씻어준다. 어머니의 눈물을 씻어주는 것은 자식들의 눈물이라고 한다. 세상의 어떤 눈물이 아버지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을 것인가. 말 없이 누운 아버지의 눈물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아니, 묻고 있었다.

76년의 얼룩진 일기들이 한 줄기 눈물 속에 모두 담겨 있었을 것이다. 수돗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숫돌이 눈에 띈다. 새벽마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함께 살아낸 흔적, 패인자국 선명하다.

새벽달 돌아가는 미명마다 낫 날 밀고 당기며 그렇게 아버지도 닳아만 같다.

서 억 서 억 서슬 푸른 낫 날에 비춰진 모습이 꾹 참아내며 억장을 갈았을 시간들 속에 고통의 씨앗이 성장하여 내가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떠한 일을 해도 당연하다 여겼던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아버지의 따뜻한 눈을 바로 보지 못했고 그 뜨거운 정을 외면하며 지낸 것 같아 더욱 마음 쓰리다. 이제야 아버지에 대한 회한에 젖어 뼈저린 후회와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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