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미용사의 하루
할머니 미용사의 하루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6.1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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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하루가 즐거우려면 미장원에 가라는 말이 있다. 여자들은 몸단장 중에서 머리손질에 특히 신경을 쓴다.

기분전환을 위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머리모양을 바꾸는 일이라고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머리 모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로 연출이 되고 그 만족감에 나 역시 자주 미용실을 찾는다.

지난주에는 나흘 동안 종일 밖에서 일을 봐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 때문에 아침마다 단골미장원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나갔는데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도 미장원이 쉬는 날이었다.

읍내 미장원 몇 군데를 들어갔지만 가는 데마다 손님이 많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빠듯하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변두리에 있는 미장원은 한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돌아 마침내 허름한 미장원 앞에 차를 세우고 긴 발이 드리워진 미장원으로 들어갔는데 웬걸 할머니 미용사다.

아차 싶어 다른 미용실로 가려 했지만 반가운 기색으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의자라고는 달랑 두개 뿐이고 한쪽에는 미장원에 딸린 작은방과 옆으로 붙은 작은 싱크대가 전부였으니 설명하지 않아도 내부가 어땠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말 미용사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몇 군데 미용실을 다니고 허탕을 친 뒤라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드라이를 하겠다고 했더니 능숙한 솜씨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미용사는 젊고 세련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할머니 미용사는 처음이라 호기심이 생겼다.

몇년이나 하셨느냐고 여쭤 보았다. 명랑한 기색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만 35년을 했다고 한다. 읍내에 미장원이 30여 군데나 있고 다들 젊고 감각있는 사람들이 많아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으로 찾아 가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은커녕 30여년 찾아오는 단골들과 함께 늙어가는 게 즐겁다고 하는 말이 어찌나 경쾌하게 들리는지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배운 거라곤 단지 미용기술이어서 어디를 가든 다른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있으면 계속할 것이라며 머리에 대한 이러 저런 에피소드를 얘기하시는데 의외로 밝은 표정이다.

드라이 소리가 멈추고 거울을 보니 예전 언니들이 했던 그 머리였다. 말 그대로 그냥 일자로 쭉 편 머리였다. 앞머리를 세우겠느냐고 물었지만 우스울 것 같아 괜찮다고 하며 나오는데 좋은 하루가 되라고 격려의 말까지 해 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까닭 모르게 명랑한 느낌이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지 함께 늙어가는 단골손님들과 친구처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모습만 자꾸 떠올랐다.

손님도 미용사도 이미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여자의 본능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거울을 쳐다보고 있을, 초라하고 조그만 시골 미용실의 풍경이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광경으로 오버랩 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 스타일이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내가 봐도 영 어색하지만 늙어도 늙지 않게 사는 미용사를 떠올린 것이다. 유행에 뒤떨어지고 감각에 밀린들 그게 무슨 소용이랴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젊어도 전혀 젊지 않게 사는 무력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보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모습은 경건한 삶의 모본 그대로였다.

나이보다 중요한 문제는 늙어서도 젊을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사는 자세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다시금 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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