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무서운 까닭
비행기가 무서운 까닭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05.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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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0.000034%)이 자동차사고로 죽을 확률(0.03%)보다 훨씬 낮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왜 비행기를 자동차보다 더 겁낼까?

내가 늘 비유로 드는 것이 있다. 하늘에서 냉장고가 떨어져 죽을 확률이 억만 분의 1이라고 해서 내가 억만 분의 1만큼 다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을 확률이 억만 분의 1이면 억만 명 가운데 하나가 죽어야 하며, 그 하나는 억만 분의 1어치만큼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어야 한다. 재수 없으면 내가 그 하나일 수도 있고, 그때 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억만 분의 1이 죽을 확률에는 다칠 확률도 빠져있고 옆에 떨어질 확률도 빠져있다. 반드시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확률이 높으면 죽음도 멀어질 것처럼 느낀다. 확률이 있으면 비록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죽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니라고, 내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죽음의 확률은 누군가를 죽이고서야 성립한다.

우리는 죽음의 확률에서 비행기사고보다 자동차사고가 낮음을 알면서도 자동차보다 비행기를 더 겁낸다. 그것은 왜 그럴까?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먼저, 자동차는 다치기라도 하는데, 비행기는 떨어지면 거의 죽는다. 그렇게 되면 공포심이 훨씬 많아진다. 버스가 벼랑으로 떨어지면 많이 죽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비행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거의 죽고 살아남는 사람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드물다. 우리는 불운에 대해서도 남아있는 요행을 기대한다. 자동차가 비행기보다 요행을 바랄 수 있기에 우리는 자동차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감정적으로 비행기는 멀고 자동차는 가깝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은 드물고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많다. 비행기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자동차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안전운행으로 사고를 피해갈 수도 있고, 불운한 경우라도 나의 실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비행기보다 개인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훨씬 많은 것이다. 비행사가 어젯밤에 술을 많이 먹었을지,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을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불안한 것이며 내가 비행기에 대해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초조한 것이다.

처음의 것이 불행 중 다행의 기대감이라면, 두 번째 것은 자기능력에 대한 신뢰감이다. 하늘에 올라가 떨어져 살아남기보다는 언덕에서 굴러 살아남기가 쉽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요행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모든 상황에서 자기의 의지가 개입되기를 희망하는 것도 사람의 일반적 본성이다. 더욱이 많은 경우, 남이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한마디로 자동차는 내가 조심하면 되지만 비행기는 내가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천재지변이 있을 수도 있고, 비행기 결함이나 정비사 실수도 있을 수 있다. 내가 할 일이 너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의지는 정말 소중하다. 내가 그것을 포기하거나 관망할 때, 우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차를 몰까, 말까? 승용차로 갈까, 버스로 갈까? 국도로 갈까, 고속도로로 갈까? 혼자 갈까, 남과 갈까? 이제는 이런 고민을 즐거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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