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絶頂)
절정(絶頂)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2.05.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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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눈길 닿는 곳마다 꽃빛이 곱다 못해 뜨겁다. 짙어가는 푸름 속 농염하게 붉은 철쭉은 봄날의 절정이다. 한낮 슬그머니 넘나드는 성급한 여름에게 남은 허세라도 부리듯 후끈 달아올라 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근처 숲에선 송홧가루가 뭉실 피어오른다. 몽환적인 연둣빛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며칠 창을 닫아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온통 사랑의 속삭임으로 분주한 오월이다. 가정의 달이란 이름에 걸맞게 공식적으로 챙겨야 하는 날들이 많다보니 사실 가계부가 빠듯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무게감 때문에 오히려 사랑이 의무처럼 변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작은 항아리를 챙겨주셨다. 예전엔 장을 담그고 절임 반찬 만들던 항아리들인데 이젠 귀찮다 하셨다. 요즘엔 대문을 열어두면 빈항아리들을 몰래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걱정하시기에 화분이라도 올려둔다고 들고 왔다. 장독대에 있어야 할 항아리가 넝쿨식물들을 하나씩 이고 거실에 자리한 풍경을 보면 쓸쓸했다.

엄하고 대쪽 같아서 싫었던, 세월이 흘러도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늘 긴장하고 살아야 했던, 그런 바위 같은 엄마에게서 귀찮다는 말이 흘러나오다니. 항아리에 은근히 내려앉은 송홧가루들을 훔쳐내며 두려움이 밀려왔다.

엄마가 안 계신 세상을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처음 미친 것이다. 상가에 조문을 다니면서도, 가끔 몸이 아플 때면 내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미루어 짐작해보며 삶을 갈무리하는 풍경 속에도 늘 엄마는 계셨다. 며칠 마음이 심란했다.

얼마 전 어린이날이 낀 연휴. 동생들이 친정집에 모였다. 먼 길 다녀오느라 늦은 우리 때문에 다시 차려진 저녁 밥상을 받고는 콧날이 시큰했다. 평범하고 익숙한 밥상이었지만 손이 많이 갔을 밑반찬들엔 통깨들이 듬뿍듬뿍 뿌려져 있었다. 귀찮다더니 자식들을 기다리며 이것저것 혼자 준비하셨을 마음에 애잔하면서도 따뜻했다.

조카들로 시끌벅적해진 엄마의 뜰 안엔 금낭화가 환했다. 오롱조롱 매달린 꽃들이 엄마 집에 담겨 수다를 떠는 우리남매 같았다.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 절정이란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이젠 연로해져 긴장이 풀어질 법도한데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는 건 자식들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아프면 엄마는 전사처럼 절정의 힘을 뿜어낸다. 몸이 아파 무던히 속을 썩인 나이기에 빚이 많다. 라일락 향긋한 친정집엔 늘 절정의 시간을 사는 엄마가 계신다.

어쩌면 자연에게도 절정의 시간이란 따로 없을지 모른다. 하루하루 생존을 이어가는 뭍 생명들에겐 매 순간이 최선이리니. 사람들만이 보는 즐거움을 따져 절정이다 아니다 각설을 풀어내는 것인지도.

붉은 절정이 지나고 나면 녹음이 짙어지겠다. 결실을 위해 뜨거웠던 시간마다 푸른 물이 스며들어 탱탱하게 열매들을 불려가겠지. 아까시와 찔레 달콤한 바람이 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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