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기와 골프
자치기와 골프
  • 이용길(시인)
  • 승인 2012.04.30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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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용길(시인)

직원들 손에 이끌려 스크린 골프 연습장에 갔었다. 처음 만져보는 골프채로 기본자세를 익히고 힘껏 휘두른 티샷에 경쾌한 소리로 맞아 멀리 날아가는 공을 보며 어린 시절 자치기를 하며 놀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스친다.

자치기는 동네 아이들끼리 패를 나누어 할 수 있는 공동놀이다. 공 대신에 작은 나무막대를 치는 놀이로 준비물은 간단하다. 60cm 안팎의 약간 굵은 긴 막대기(어미자)와 13cm정도의 가늘고 짧은 막대(새끼자)만 있으면 그만이다.

우선 가위 바위 보로 편을 가른 뒤 이기는 편이 공격 조, 지는 쪽은 수비다.

새끼 자 양쪽을 45도 정도로 비스듬히 깎은 뒤 맨땅 위에 놓고 어미자로 가볍게 끝을 때려 공중에 띄운 후 힘껏 되받아 친다.

멀리 날려 보낸 뒤 어미자로 거리를 측정하여 승부를 가린다. 간단한 놀이지만 자 수를 싸고 다투기도 하고, 맨 땅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다치는 게 예사다.

칼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철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흙 묻은 옷을 털며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추위도 모르냐"며 혀를 끌끌 찼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대문 밖에서는 아이들이 "친구야 놀~자" 하며 마을공터로 끌어낸다.

자치기는 팀워크와 함께 공간의 넓고 좁음에 따라 자신의 기술과 요령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환경과 여건에 순응하면서 거리를 측량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놀이다.

자치기와 닮은 것이 골프다. 막대로 쳐서 멀리 보내는 것과 골프채로 공을 날리는 점이 비슷하고, 편을 갈라 승부를 가리는 것은 같다. 다만 '구멍자치기'는 구멍에서 새끼자를 쳐내는 것이지만 골프는 작은 구멍에 공이 잘 들어가게 하는 것이 다르다.

대부분의 전래 민속놀이가 그렇듯이 자치기 역시 그 유래를 알 수 없다. 단지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와 공터만 있으면 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 온 놀이라고 짐작해볼 뿐이다.

골프 또한 스코틀랜드의 목동들이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지팡이로 돌을 쳐서 토끼 굴에 넣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설을 믿는다면 우리의 자치기 유래와 다를 바 없다.

'블랙 탱크'라는 별명의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 1년 때.

체육선생님이 "골프가 어떤 운동이냐"고 물었을 때 "그거 자치깁니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어린시절 자치기를 하며 놀았던 완도 섬 소년이 한국인 최초로 미국 PGA 우승선수로 세계에 우뚝 선 것은 자치기의 내공 덕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자치기를 하며 놀던 그 시절 코흘리개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2차로 스크린 골프 연습장으로 가는 모습이 이젠 낯설지 않다.

과거는 촌스럽고 우스꽝스럽지만, 자치기의 추억은 티 없이 맑고 순수했던 동심을 떠올릴 수 있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굿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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