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선택
그들의 선택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2.04.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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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강희진 <수필가>

며칠 전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모처럼 만나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으니 우울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풀렸다. 한창 기분 좋을 만한데 웬걸 또 시비가 붙었다.

평소에는 샌님처럼 조용하다가도 술이 거나해지면 돌변하는 그 사람이 늘 문제다. 기분 좋게 시작된 술자리가 번번이 깨지고 만다. 처음과는 달리 씁쓸하게 일어나며 사람을 돌변시키는 술의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박시룡의 '술 취한 코끼리가 늘고 있다'라는 책에 보면 아프리카 코끼리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알콜을 찾는다고 했다. 발효된 열매를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코끼리가 알콜을 먹고 취하면 비틀거리며 트럼펫 소리를 내고 싸우는 등 인간과 흡사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또한 코끼리에게 술을 먹게 했더니 취한 코끼리들이 코를 땅에 박고 흔들고 내리치며 평소보다 훨씬 더 소란을 피운다고 했다. 0.5ha 되는 공간에 1개월을 가두어 키웠더니 넓은 지역에 사는 코끼리보다 3배 정도 더 알콜을 찾았다고 한다. 연구결과 코끼리들은 사고가 날 때까지 알콜을 마셔댔으며 종종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평소 조용하기만 한 그 사람은 자기의 성격이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코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 흔히 술주정은 고치지 못한다고 하는데 앞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그 사람의 주정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습관이 된 탓인지 웬만하면 잘 자는데 어떤 날은 한 번 깨면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럴 때면 일어나 와인을 한 잔씩 마신다. 그러다 보니 양이 점점 많아지고 그래야 잠을 이룰 수가 있다. 가끔 이러다가 알콜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혼자 걱정 아닌 걱정도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장 먼저 알콜의 힘을 빌리는 것 같다. 적당한 알콜은 활력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느슨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과하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코끼리는 이성이 없는 동물이라 주정을 해도 별다른 흉이 되지 않을 테지만 이성을 자랑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수치가 아닐까 한다. 인간을 추하게 만드는 게 술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술이 그렇게 만드는 거라면 과감히 물리칠 수 있어야겠다는 말을 했더니 애주가인 남편의 술 예찬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서라 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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