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어머니의 등골계절
아버지·어머니의 등골계절
  • 문종극 기자
  • 승인 2012.02.26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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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90년대 후반 IMF시절 이 땅의 아버지들이 쪼그라들면서 한없이 작아지던 그 시절, 김정현의 소설'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정현은 소설에서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면서도 그 때문에 가족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한국형 아버지 주인공 한정수를 통해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를 눈물겹게 그려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아버지임에도 부인과 딸로부터 무능한 아버지로 몰린다. 다정하지 않은 남편에게 큰 불만을 표하는 부인과 딸 역시 아버지의 존재가 가족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여기며 무시한다. 그러다가 아버지 정수는 췌장암 선고를 받고 가족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으려 갑자기 사라진다. 사라진 남편을 찾던 아내 영신은 남편의 친구인 의사 남 박사로부터 정수의 상태를 알게 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부인과 딸은 비로소 남편과 아버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눈물의 화해로 가정의 화목을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필자가 목이 메였던 부분은 "제발 좀, 이제 보내 줘"였다. 살아있어 가족에게 큰 짐이 될뿐 더 이상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없는 자신을 죽게 해달라고 의사 친구에게 간곡하게 매달리며 뱉은 말, "제발 좀, 이제 보내 줘".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읽던 책을 놓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떤가. 그저 어머니만 떠올리면 코끝은 이미 시큰하고 눈가에는 금새 눈물이 고인다. - 마음의 고향이다. 강하면서 한없이 부드럽다. 가정과 자녀를 위해서는 무한한 희생을 한다. 받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을 천명처럼 생각한다. 감미롭고 포근하며, 따뜻하다. 든든하다. 자녀를 위한 자신의 희생을 오히려 보람으로 여긴다. 끝없이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짓눌림에도 묵묵히 해내는 것을 숙명으로 여긴다.- 우리들 어머니의 모습이다. 머리가 먹먹해질 정도로 글과 말로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는 단어가 어머니이다. 자식을 애물단지라고 했는가. 저희들이 불편함이 없을 때는 그저 호칭에 불과한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名詞) 아버지, 어머니일 뿐이다, 그러나 슬프거나 외롭거나 힘이 들때는 절절하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는다. 그래서 자식은 애물단지인 것이다.

이런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힘든 계절을 또 보냈다. 등골이 휜 채 2월을 보낸 것이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은 모자란 과목을 보충하겠다며, 스펙을 쌓겠다며 손을 벌린다. 그러고나면 졸업과 입학시즌이 온다. 선물은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창시절 최고였던 만년필 한자루로는 안된다. 몇십만원짜리 등골브랜드와 스마트폰, 게임기라야 통한다. 등록금은 또 어떤가. 여기까지 이참저참해서 간신히 메꾸고나면 휜 등골을 펴면서 '휴' 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대학생은 기숙사라도 들어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하숙비나 원룸을 얻어줘야 한다. 신입생의 경우 합격을 하고나면 등록금 외에도 무슨무슨 고지서가 그리도 많은지. 자녀 방학 전인 11월과 비교하면 2월의 가계부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래서 2월은 부모들에게는 등골 계절이요, 한숨의 달이 된다.

오죽하면 지난 2010년 지방선거때 56억3731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까지도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풋풋한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저도 딸이 둘이고 둘째가 올해 대학을 졸업했는데 두 녀석 모두 대학 다닐 때는 정말 허리가 휘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했겠는가. 물론 오 전 시장의 오버지만 250만~4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보통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휜 등골은 언제 펴질지도 모른다.

등골의 계절 2월을 잘 견딘 아버지와 어머님들이 3월은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기대해보자. 혹시 압니까. 5%대로 시작된 등록금 인하가 진짜 반값이 될는지.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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